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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담합 어찌하오리까~

건설사 담합 어찌하오리까~

등록 2014.08.05 09:00

성동규

  기자

정부 공구분할 무리한 발주 등 담합 부추긴 셈전문가들 “현행 제도에선 근절못해” 한 목소리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밀약행위에 따른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폭탄’에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의 과징금은 4355억 원으로 역대 건설사에 부과된 과징금 중 액수가 가장 크다. 사진은 건설 중인 호남고속철도 모습이다. 사진=한국철도시설공단 제공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밀약행위에 따른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폭탄’에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의 과징금은 4355억 원으로 역대 건설사에 부과된 과징금 중 액수가 가장 크다. 사진은 건설 중인 호남고속철도 모습이다. 사진=한국철도시설공단 제공


대형 국책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들의 담합(밀약)행위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솜방망이 처벌을 강화하고 어마어마한 액수를 과징금으로 부과해 일벌백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밀약이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원인을 찾아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사들이 원죄를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강력한 처벌만이 밀약의 근절을 위한 최선책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제도적 변화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징금 폭탄에 고사위기= 대형건설사들이 과징금으로 휘청인다. 지난해 대규모 적자사태의 악몽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융단 폭격이 이어진 탓이다.

올해 건설사가 밀약으로 부과받은 과징금은 호남고속철도(4355억 원)를 비롯해 총 13건 7595억 원에 달한다.

현재 조사 중인 4대강 2차 턴키공사와 천연가스 주배관 등까지 더해진다면 최대 3000억 원의 과징금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올 연말에는 1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건설사들의 밀약은 지난 2010년 1건 423억 원, 2012년 2건 1115억 원에서 급격하게 증가했다.

올해 밀약으로 적발된 현장은 모두 지난 2008년~2009년에 발주된 물량이다. 정부가 국제 금융위기 여파를 타개하고자 건설업계에 풀어놓은 선물보따리가 이제는 생존을 위협하는 덫이 된 것이다.

업체별로는 삼성물산이 1036억 원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호남고속철도에서 부과받은 836억 원은 리니언시 제도 덕분에 면제받을 예정이다. 실제 부담할 과징금은 200억 원에 불과하다.

뒤를 이어 대림산업 981억 원, 현대건설 977억 원, SK건설 577억 원, 대우건설 511억 원, 포스코건설 491억 원, GS건설 439억 원, 현대산업개발 404억 원, 동부건설 269억 원, 롯데건설 245억 원 순이다.

과징금은 당기순이익에 곧바로 반영된다. 이런 탓에 일부 중견사는 적자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다. 대형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코스피에 상장된 건설업체의 올해 순익 컨센서스 대비 과징금 비중은 약 30%에 달한다.

현대산업개발이 부과받은 과징금 404억 원은 당기순익 컨센서스 1115억 원의 36.2%에 달했다. 대림산업(전망치 2970억 원)은 33.0%, GS건설(1570억 원) 27.9%, 대우건설(2693억 원) 18.9%, 현대건설(7293억 원) 13.3%다. 삼성물산은 3.6% 수준이다.

◇공공공사 거들떠보지 않는 건설사들=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은 아예 공공공사에서 발을 빼는 형국이다. 삼성물산은 지난 상반기 공공공사를 한 건도 수주하지 않았다. 다른 건설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5500억 원에서 1325억 원으로 줄었고, 대우건설은 10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형건설사들 전체 수주액의 20%를 웃돌던 공공공사의 비중은 한 자릿수대로 떨어졌다.

실제 턴키방식으로 발주된 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 1공구와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 하남선 2공구, 4호선 진접선 2공구 등 시공사를 찾지 못해 대형공사들이 줄줄이 유찰되는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유찰사태의 원인은 수익성이다. 최저가 입찰제를 통해 공사를 수주해도 손해가 불을 보듯 뻔해 입찰참가를 꺼리거나 밀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게 건설업계의 항변이다. 공사비가 과거 공사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산정돼 현실성이 낮다는 것이다.

2008년~2009년 대형 국책 사업이 몰린 것도 문제다. 이 기간 공구 분할 방식으로 발주된 대형 공사 규모만 13조 원에 육박한다. 정부는 공기를 무리하게 단축하기 위해 공구 분할과 동시 발주를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4대강 사업이다. 정부는 2011년 말로 못 박은 준공 기한을 맞추기 위해 2009년 6월 15개 보 공사를 한꺼번에 발주했다. 공사비만 총 4조 1000억 원에 달했다. 그나마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국내 건설사는 10곳에 불과했다. 정부가 사실상 건설사들에 밀약을 부추긴 꼴이다.

4대강 사업을 감사했던 감사원조차도 “업계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한꺼번에 많은 공사를 발주해 경쟁을 제한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실적을 올리려는 정부 정책과 이런 기조를 묵인하는 사회적 풍토가 바뀌지 않는다면 밀약의 고리는 더욱 견고해지고 점점 더 끊어내기 어려워질 것이다.

효율화를 핑계로 건설사들의 목줄을 죄는 입찰제도 역시 손질이 시급하다. 물론 무엇보다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성 있는 건설사들의 자정노력이 밑바탕이 되어야한다.

◇건설사 벙어리 냉가슴···제도개선 시급=공정위에 밀약 혐의로 과징금을 받은 건설사들은 일말의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는 게 공식적인 견해였으나 속으로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연이어 밀약 사실이 불거져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밖에 드릴 수 없다”며 “과징금,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생사기로에 선 건설사들에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B 건설사 관계자도 “최근 건설사들이 입찰 밀약 근절하겠다고 사과와 선처를 읍소했다. 공정위도 건설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관용을 베풀겠다고 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며 “다소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최근 건설부동산 경기를 살리려는 정부의 노력, 업계의 자정 움직임 등과 역행하는 결과라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C 건설사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국책공사마다 밀약 문제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과징금 액수가 커 여파도 크다”며 “과징금이야 내야겠지만 입찰제한 등 추가 제재를 막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가 4대강 밀약을 묵인·조장했다는 한 건설사의 법정 주장이 사실과 다르지 않다”며 “당장 중견사들은 공공공사 입찰이 제한되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건설사 밀약이 관행처럼 이어온 것은 입·낙찰제도의 허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저가낙찰제도와 공기단축을 요구하는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입찰 담합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자연스레 동참하게 된다는 것.

실제로 한국건설관리학회 등 분석결과 정부가 발주한 최저가낙찰제 공사의 실행률은 평균 104.8%로 조사됐다. 실행률은 실제 공사에 들어간 비용으로 1000억원짜리 공사을 수주받아 공사비로 1048억원을 투입했다는 의미다. 건설사가 48억원의 적자를 보고 공사를 한 셈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밀약을 맺은 것은 분명 불법이지만 최저가입찰제도의 특성 아래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건설사들이 최소한의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입찰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동규 기자 sdk@

뉴스웨이 성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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