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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현 기자
등록 :
2015-11-10 07:59

재계 판도 뒤바꾼 18년 전 ‘官治 빅딜’ 어땠나

DJ 정부 “대대적인 재벌 혁신”에 빅딜 활용
政-財 신경전 끝에 5대 그룹 ‘빅딜’ 계획 탄생
빅딜 산물 SK하이닉스·기아차, 세계적 기업 성장
셀러리맨 신화 김우중의 대우그룹은 역사속으로

최근 기업 간 빅딜이 거래 당사자인 각 기업의 자발적 움직임에 이뤄지는 것에 반해 ‘빅딜’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지난 1990년대 말에는 정부 주도로 빅딜이 추진됐다. 글로벌 반도체 공룡으로 성장한 SK하이닉스도 이 당시 빅딜의 산물이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전경. 사진=SK하이닉스 제공


최근의 기업 간 빅딜은 거래의 당사자인 각 기업이 거래 제안부터 마무리까지 자발적으로 맡아서 해결하는 ‘셀프 빅딜’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빅딜’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지난 1990년대 말에는 정부와 금융권 주도로 강력한 빅딜이 연이어 추진됐다. 그야말로 지금과는 분위기가 180도 다른 시대였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빅딜’이라는 말이 처음 언급되던 1998년으로 돌아가 보자.

◇‘정부 주도 빅딜’의 탄생 = ‘빅딜’이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IMF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던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선거 이후다.

당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기업 간의 대규모 사업 교환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빅딜’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빅딜이 구체화된 것은 1998년 6월이다. 김중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입에서 “5대 그룹(삼성·현대·대우·LG·SK) 간의 빅딜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고 며칠 뒤에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5대 그룹의 빅딜을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빅딜에 대한 정부의 압박 강도는 가혹하다고 여겨질 만큼 강했다.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빅딜에 대해 유보적 반응을 보이는 기업에 여신 대출을 중단하겠다는 엄포까지 내렸다. 재계는 “시간을 달라”고 불만을 내비쳤지만 정부의 압박 수위는 여전히 강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첫 번째 빅딜 계획이 등장했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통합하고 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을 통합하며 현대정유가 한화에너지 정유부문을 인수해 하나로 합병하는 등의 계획이 탄생했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는 계획도 이후에 등장했다.

이들 계획 중에서 현실화된 것은 현대전자의 LG반도체 지분 인수와 현대정유의 한화에너지 정유부문 인수였다. 더불어 부도를 맞은 뒤 국제 입찰 시장에 나왔던 기아자동차를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과거의 빅딜이 정부 주도로 행해진 것은 그 당시 정권의 경제 정책 기조와 연관이 깊다. 1998년 2월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외환 위기에서 비롯된 국난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중 가장 공격적으로 몰아붙인 정책은 ‘재벌 개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민의 정부 경제 관료들은 시종일관 “대기업이 먼저 개혁을 해야 경제의 기반이 바로 선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재계의 자발적 빅딜 계획에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빅딜 협상 테이블을 차리고 협상의 전 과정을 사실상 감시했다. 혁신이 미진한 기업에 대해서는 여신 대출 중단 등의 엄포까지 놨다. 이 과정에서 재계 2위까지 올라갔던 대우그룹이 무너졌고 재계의 판도는 뒤바뀌었다.

◇18년 전 빅딜 대상기업, 지금은? = 1990년대 말 5대 그룹 빅딜을 통해 탄생한 통합법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였다. 1999년 당시 세계 메모리 반도체업계 5위였던 현대전자는 빅딜 합의를 통해 업계 4위 LG반도체의 지분을 인수했다.

1999년 5월 통합법인으로 재탄생한 현대전자는 월 30만장 규모의 8인치 웨이퍼 생산 능력을 가진 반도체 회사로 거듭났다. 그러나 회사 안팎의 악재로 현대전자가 휘청대기 시작했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결국 현대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를 분할해 하이닉스반도체로 이름을 바꾸고 나머지 30여개 사업 부문은 모두 외부에 매각했다.

그럼에도 회사의 위기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적자 폭은 늘어났고 회사 안팎의 돈은 돌지 않았다. 자금난 탓에 제품 생산을 위한 신형 기재 도입도 하지 못했고 생산주기율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2000년대 말부터 해외 매각 추진 등이 거론됐다.

하이닉스반도체에 햇살이 비친 것은 2011년이다. SK그룹이 3조4267억원을 투자해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부활의 서광이 비쳤다. 결국 SK의 일원이 된 하이닉스는 꾸준한 투자 끝에 명성 회복에 대한 탄력을 받았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삼성전자에 이은 D램 메모리 반도체 세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경영 실적도 연간 영업이익이 5조원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폭 개선됐다. 사실상 SK그룹 계열사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효자 기업이기도 하다.

기아자동차도 정부 주도 빅딜 추진 당시 주인이 바뀐 기업 중 하나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1998년 10월 총 부채 7조1700억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기아차 주식 51%를 인수했다.

빅딜 당시만 해도 업계 관계자들은 기아차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워낙 부채가 많은 기업이었고 현대차와 기아차가 서로 중복되는 차종이 많았던데다 기아차의 부활을 위해 현대차가 공격적 투자를 집행할 경우 현대차도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안팎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기아차는 현대차의 형제 기업이 된 이후 환골탈태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경영실적은 인수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법정관리 체제도 22개월 만에 벗어났다. 자본 잠식 상태였던 재무 상태 역시 빠르게 회복됐다.

오늘날 기아차는 세계가 주목하는 자동차 메이커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현대차와의 플랫폼 공유와 공동 R&D 활동을 통해 혁신적인 신차를 잇달아 만들어냈고 결국 현대차그룹이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원동력을 제공했다.

회사의 실적 역시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지난해 기아차의 연간 매출액은 47조970억원, 영업이익은 2조5725억원이었다. 한때는 영업이익이 3조원을 웃돌던 시절도 있었다. 왕년의 ‘미운 오리’가 빅딜 덕분에 ‘백조’로 재탄생한 셈이 됐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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