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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리포트/단식의 정치학]‘민주화’ 이끈 YS·DJ의 교훈…“시작은 쉬워도 끝내긴 어렵다”

김영삼, 민주화 요구하며 23일간 단식…DJ와 연대
김대중, 13일간 단식 통해 지방자치제 실현 이끌어
문재인, 9일간 동조단식…세월호특별법 국회 통과
황교안, 지소미아 종료 연기 소득에도 비판적 시선
중요한 건 명분…民心 못얻으면 ‘쇼’로 보일 수 있어

정치인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끔 ‘곡기(穀氣)’를 끊는다. 단식은 한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8일째인 지난 11월27일 의식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후 28일부터 단식을 시작하려 했지만, 가족과 의료진의 만류로 단식을 중단했다. 황 대표는 단식 2일차 때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죽기를 각오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건강악화로 단식은 끝을 맺었다.

흔히 정치권에선 단식을 ‘양날의 검’으로 표현된다. 단식을 시작하는 건 쉬워도 끝내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끝낼만한 명분을 갖기가 어렵다는 건데 황 대표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하고 건강악화라는 명분으로 그만뒀다.

황 대표가 원했던 건 3가지였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연기 ▲공무원비리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 폐기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인 선거제 개혁안 폐기 등이다.

이중에 지소미아는 종료가 연기됐다. 청와대는 지소미아를 조건부로 연기했고, 연기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강기정 정무수석을 통해 황 대표에게 단식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3가지 중에 1가지만 얻고 끝낼 생각이 없었고, 단식은 계속됐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들은 12월3일 이후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 표결이 있을 예정이다. 이 때문에 황 대표의 단식을 적어도 12월 초까지 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이 본회의에 오르기도 전에 황 대표는 숟가락을 들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황교안 대표의 단식은 뜬금없었다고 볼 수 없다”며 “지소미아 관련 협상에 있어서 우리 정부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나머지 2개 요구조건이었던 선거법과 공수처법에 대해선 신 교수는 “아직 평가를 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응급실로 향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황 대표, 8일만에 응급실행…황제단식 논란 야기=황 대표는 8일째에 응급실로 향했다. 9일째 되던 날 한국당은 황 대표의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이미 전날부터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고도 밝혔다. 단식은 시작과 끝을 정하기도, 방식에 대한 제한을 정하기도 애매하다. 그간 단식 중에 링거를 맞으면 단식이 아니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황 대표가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았을지 알 수 없다. 황 대표는 단식 전 영양제를 맞았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단식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황 대표와 함께 사진을 찍고 영양제를 맞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단식 도중 황 대표는 대부분을 누워 있었고, 여러 직원이 도움을 주면서 ‘황제 단식’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텐트 설치가 법으로 금지된 청와대 사랑채 앞에 대형 몽골식 천막까지 설치하면서 특혜를 받고 단식을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한국당은 단식의 새로운 역사를 쓴 적이 있다. ‘릴레이 단식’이라는 방식이다. 여러 의원들이 나눠서 단식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말만 들으면 의원들이 며칠씩 나눠서 할 것 같지만, 몇시간씩 나눠서 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1월 한국당 의원들은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에 반발하며 5시간30분씩 릴레이 단식을 벌였다. 당시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과 비교되면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물론 정치인들의 단식을 단순히 관심을 끌거나 웃음거리로 치부하긴 어렵다. 역대 정치권에선 다양한 이유로 정치인들의 단식이 있어왔다. 민주화의 시작, 지방자치의 시작 등은 거물급 정치인의 단식이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단식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거물급 정치인의 민주화를 위한 단식=거물급 정치인 단식의 시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꼽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3주년인 1983년 5월18일부터 6월9일까지 23일동안 단식을 벌였다. 그는 단식 시작 전 성명서를 통해 ‘5개 민주화 요구 사항’을 발표했다.

요구사항은 ▲언론 통제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 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개헌 등이었다. 자택에서 단식을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해 단식을 이어갔다.

병원을 찾은 동료 의원과 사회 원로 등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의 요청으로 단식은 중단됐다. 요구사항 중에 곧바로 이뤄진 것은 없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대 의사를 밝히면서 두 전직 대통령이 손을 잡는 계기가 됐다.

두 전직 대통령은 1983년 8월15일 서울과 워싱턴에서 민주화 투쟁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신한민주당 창당의 모체가 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는 등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이 민주화 투쟁을 위한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영향령 있는 단식을 기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시절이었던 1990년에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하며 13일간 단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은 대통령 직선제와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는 것에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식 이후 1991년 지방의회 선거,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됐다. 지방자치제 시행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시켰고, 지방의 발전을 통해 국가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단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는 단식=문재인 대통령도 단식의 경험이 있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었던 2014년 8월에 세월호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10일간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했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말리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었고, 김씨가 단식을 중단하면서 문 대통령의 단식도 종료됐다.

문 대통령은 당시 당권주자로 기반을 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식 이후 많은 지지를 얻게 됐다. 또한, 현직의원임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진보진영에서 신임을 얻는 계기가 됐다. 세월호특별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지방재정 개혁안 철회를 외치며 10일 간 단식에 돌입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경기지역 6개 지자체의 1년 예산 중 8000억원 정도를 도내 다른 지자체에 나눠주는 지방재정 개편에 항의한 것이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으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광화문 농성장에서 업무를 보기도 했다. 당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만류해 단식은 중단됐다. 이를 계기로 이 지사는 개인 지지세력을 확장해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단식 도중 폭행당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 사진=MBN 뉴스 캡처

◇국회에선 어떤 단식이 있었나=한국당의 전신이었던 새누리당의 대표를 지내던 이정현 의원이 국회서 단식을 했던 적이 있다. 2016년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 사퇴를 촉구하는 단식을 했다.

이정현 의원의 단식은 비슷한 시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국면에 돌입하면서 ‘회피용 단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국회는 국정감사 기간이었는데,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국감을 일주일간 회피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이 의원은 국회 내 사무실에서 단식을 하면서 문을 잠그고 하는 등 ‘비공개 단식’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뭘 몰래 먹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비공개 단식은 계속됐다. 이 의원은 건강악화를 이유로 7일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황교안 대표와 비슷하게 국회 밖에서 진행했던 단식도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5월 ‘조건 없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투쟁에 나섰다. 단식 중 김 전 원내대표는 3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김 전 원내대표는 깁스를 하고 나타나 단식을 이어가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했다. 김 전 원내대표도 황 대표와 비슷하게 9일만에 그만뒀다. 다만, 그의 바램대로 드루킹 특검은 관철됐다.

지난해 12월에는 황 대표가 반대하는 선거법을 놓고 단식을 진행한 적도 있다. 당시 손학규 바른미래당·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로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면서 이를 수용하지 않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예산안 합의에 반발해서 단식투쟁을 진행했다.

두 정당 대표는 국회 본관 내부에 있는 로텐더홀에서 단식을 진행했다. 10일간 단식을 진행하다가 여야가 선거법 개정 논의를 하면서 중단하게 됐다. 이후 선거제 개혁을 놓고 여야 5당의 합의문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두 대표의 단식이 여야의 선거법 개정 논의에 탄력을 얻게 했다. 이후 선거법은 패스트트랙에 지정돼 본회의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황 대표는 이 선거법을 반대하면서 단식을 시작했다.

황 대표의 단식은 끝났지만 섯부르게 성과를 논하긴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거물급 정치인들의 단식처럼 정치·사회적 변화를 이끌 만한 사건이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장 황 대표의 단식은 마지막 정기국회를 멈추게 한 단초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대현 기자 xpres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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