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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등록 :
2019-12-17 15:38

수정 :
2020-01-03 13:29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㉔ 대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스물네 번째 글의 주제는 ‘대오’다.


대오(大悟) ; 깨달음은 자신이 무한한 세계의 일부이며 무한한 세계 자체라는 인식


인간이 세상과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눈이 생기고 나면, 자신을 세분한다. 육체의 요구에 탐닉하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적인 자신이다. 그(녀)는 순간적인 자극에 집착하는 육체적인 욕망과 정신적인 집착가운데, 자신의 물리적인 삶이 제한적이고 덧없고 허망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물질적인 자극이 실제이며 만족스럽지만, 고통과 슬픔도 그와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는 기쁨과 슬픔, 안락과 고통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지 모른다고 가정하기 시작한다. 인류의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그 초월적인 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원천이다.

인간은 육체와 시간이 지나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런 가치를 ‘무한無限’이라고 말한다. 무한이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에게 언제나 만족스럽고 인간들의 관계를 개선하고, 그들의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가치다. 바다와는 격리되어 있지만 물 한 방울이 바다의 모든 요소들을 담고 있듯이, 순간을 사는 인간이 무한과 격리되어 있지만, 그 원초적인 바다를 희구하고 그 심오한 침묵에 존재하는 무한을 찾고 싶어 한다.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 (1934-1996)은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의 DNA에는 질소가, 치아에는 칼슘이, 피에는 철분이, 사과에는 탄소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붕괴하는 별들의 내부에서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별로 만들어졌습니다(We are made of starstuff).”

인간 존재의 목적은 저 하늘의 별로 만들어진 자신의 회복이다. 깨달음이란 자신이 무한한 세계의 일부 이며 무한한 세계 자체라는 인식이다. 그것은 고대 인도인들이 발견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그들은 <우파니샤드>에서 이 깨달음을 ‘아함 브라흐마스미Ahaṁ Brahmāsmi’, 즉 ‘나는 우주다/ 나는 무한이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산스크리트어 ‘아함’은 1인칭 단수 대명사로, 나를 인식한 주체로 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나와 함께 존재하는 유한한 그것이다. ‘아함’은 소멸한 자신, 욕망에서 질퍽이는 내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태를 개선하고 변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개선된 나다. 개선된 나는 현재의 나를 미래로 인도하고 진리를 향해 몰입되어 있으며, 삶과 죽음조차 초월하는 나다.

모세가 기원전 13세기 시내 산에서 만난 깨달은 신의 모습이기도하다. 모세는 사막에서 40년간 생활하면서, 자신의 섭리를 깨닫는다. 어느 날, 누구도 진입한 적이 없는 거룩한 지경에 들어가 불이 붙었으나 연소되지 않는 나무를 발견한다. 그 거룩한 불꽃은 사막의 보잘 것 없는 가시덤불에 붙었으나, 그 나무를 초월한 불이다. 모세가 신에게 이름을 물으니, 신은 대답한다. “나는 나다”. 이 대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문구 ‘에흐에 아쉐르 에흐에’의 의미는 심오하여 단순한 번역을 거절한다. 이 문장은 흔히 ‘나는 스스로 있는 자’ 혹은 ‘나는 나’라고 번역한다. 나는 이 문장을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기 위해, 매일 매일 조금씩 되고 있다’(I am becoming who I want to be)로 당분간 번역하고 싶다. 내가 되고 싶은 나는 궁극적으로 내 안에 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일치할 때, 그는 신적인 ‘나’가 된다.

신적인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것은 예루살렘이나 메카와 같은 도시도 아니고, 종교시설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누가 그런 곳에 신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다. 신은 인간의 말로 담을 수 없고 장소로 제한할 수 없는 무한이기 때문이다. 신적이며 무한한 나를 발견하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바로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이다. 무한한 자신을 발견하여 르네상스와 근대세계를 연 중세시대 한 시인이 있었다. 이탈리아 피렌체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1294년 ‘라 위타 누오와’La vita nuova 즉 <신생>이라는 소책자를 출판한다. 이 책은 산문과 시가 혼합되어 있는 ‘프로시메트룸’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단테는 당시 라틴어를 사용하여 저술한 중세문필가들과는 달리, 피렌체 도시가 속한 투스카니 지역의 방언으로 이 책을 썼다. 그가 후대에 저술한 <신곡>과 함께 오늘날 이탈리어의 효시가 되었다.

동시대 중세 유럽의 궁정문학의 근간인 ‘궁정연애’의 형식을 빌렸으나, 그 내용과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였다. 그는 이 사랑문학에서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감정보다는 사랑자체에 집중하였다. 그는 궁중연애시를 숭고한 사랑의 시로 승화하였다. 중세시대 숭고한 사랑은 신학자들의 전유물로 교회 안에서 만 발견되고 칭송되었다.

단테는 일생의 사랑인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어거스틴의 <고백론>이후, 자신의 사적인 감정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용감한 작품이다. 제 24장은 단테가 발견한 사랑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 구절이다.

“나는 내 심장에서 무엇인가 깨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내 잠자고 있던 사랑이라는 영혼(사랑을 할 수 있는 영혼)이었습니다.
그런 후, 나는 사랑이 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나는 이제 사랑을 두 눈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생> 24곡a


단테는 깨달았다. 무한한 신적인 영역은 가시적인 건물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그는 그 곳으로 진입하여 안식, 조화 그리고 평온으로 가득한 무한한 사랑을 발견한다. 이 사랑을 발견한 순간, 그는 모든 악과 불화로부터 탈출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 자신의 심장 깊숙한 곳에서 영원하고 무한한 삶의 원칙인 사랑을 발견한다. 그가 자신의 심장에서 발견한 것은 한정적인 쾌락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이다. 그것은 자신의 심장 깊숙이 잠자고 있었지만, 이제 기지개를 펴고 깨어났다. 나는 온전한 나, 나를 승화된 나로 변모시키는 사랑이, 성전이나 경전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 속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희열에 차있다. 나는 무한을 희구하는가? 나는 그 안에서 내 자신을 응시하는가?

<단테가 피렌체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영국화가 헨리 홀러데이 (1839 - 1927) 유화, 1884, 20.32 cm x 20.32 cm 인디애나폴리스 워커 미술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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