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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등록 :
2019-12-24 14:06

수정 :
2020-01-03 13:25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㉕ 에베레스트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스물다섯 번째 글의 주제는 ‘에베레스트’다


에베레스트 ; 내가 정복해야 할 ‘온전한 나’ 라는 산은 있는가


이른 아침 산책길엔 언제나 오리와 고니가 북한강 지류에서 나를 기다린다. 이 추운 영하날씨에 수많은 오리들은 어디서 왔을까? 산책길을 돌고 나면, 오리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리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세계에서 내가 시야로 경험한 세계로 안으로 잠시 들어온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분연히 자신의 자취를 감춘다.

영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다. 성 비드Saint Bede(672-735)다. 그는 앵글로색슨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 한 것을 다룬 <영국인 교회사>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People를 저술하였다. 비드는 이 책에서 자신의 눈앞에 등장했다 금방 사라지는 제비 이야기를 꺼낸다. 때는 킹 아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추운 겨울이었다. 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쳤다. 성안은 벽난로와 화로로 밝고 따뜻했다. 가끔 어디에선가 제비가 혹독한 날씨를 피해 성안으로 들어와 잠시 불 주위에서 날라 다니며 몸을 녹였다 금방 다시 창밖으로 날라 가 버린다. 그 제비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아닌 세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자신이 오감五感으로 확인하는 세계만을 온 누리라고 착각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익숙한 그래서 안락한 집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보낸다. 오감이 바로 우주이며 세계다. 오감을 넘어선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감을 넘어선 외부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광대한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태평양 바다와 고비 사막과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다. 성 비드가 말한 제비는 무한한 외계에 대한 은유다. 그 세계는 나의 탐험을 기다리는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즉 ‘아직 인식되지 않는 지형’이다.

우리 대부분은 익숙한 세계에 안주한다. 그 이유는 우리 대부분이 그 미지의 세계로 모험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3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사피엔스가 29만년을 혹독한 빙하기를 거치면서,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세계로 여행하는 것은 죽음이라고 여겼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동지와 그 며칠간은, 만물이 숨을 죽여 죽은 채 할 수밖에 없는 절망의 시절이다. 그 오래된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우리를 익숙한 것에 탐닉하도록 세뇌시켜왔다.

소수의 인간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를 오히려 허상이며 함정이라고 판단한다. 자신의 개성을 말살시키는 출구가 없는 미로로 여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그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만 한다.

영국 산악인 조지 허버트 리 맬러리(1886-1924)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1924년 제3차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여했다 에베레스트 산에서 실종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허망한 시도를 거듭하는 맬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등반에 필요한 돈으로 런던 시내 홈리스들에게 먹을 것이나 사주라고 비아냥거렸다. 에베레스트 산 등반은 비도덕적이며 비인간적이며 공정하지 않다고 비난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비꼬며 물었다.

그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등반을 통해 명성과 부, 더욱이 권력을 얻을 수는 없다. 만일 의료진이 동반한다면,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신체의 반응에 대한 정보 정도는 얻을지 모른다. 맬러니는 다음과 같이 덤덤하게 말한다.

“당신은 이해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엔 이 높은 산에 도전하라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등반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 분투는 삶의 분투입니다. 삶은 한없이 높이 고양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 모험에서 얻는 수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기쁨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먹거나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먹고 돈을 버는 것 입니다. 에베레스트 등반 목적은, 그 높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Because it's there”

인간의 마음속엔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은 산이 우리의 등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산은 내가 정복해야 하는 ‘온전한 나’라는 산이다. 그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처럼 정교한 훈련과 적절한 등반장비가 필요하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의 오감이란 세계에 감금되어, 자신에게 어울리는 에베레스트 산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집단의 이름으로 자신의 숨겨진 폭력성을 드러내, 사회는 시기, 질투, 대립으로 점철된 아노미에 휘말리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정복해야할 높은 산이 있다고 믿는 것이 각성覺醒이며, 자신만의 산을 정복하기 위해 매일 매일 몰입하는 삶이 해탈解脫이다.

인류의 성인들과 현자들은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한 자들이며, 예술가들은 그 깨달음을 손과 입을 통해 글, 소리, 작품으로 어렴풋이 표현한 자들이다. 자신의 심연 속에 존재하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발견한 자아가 곧 우주다.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야말로 나를 승화시켜 환희로 그득하게 만든다. 인도경전 <우파니샤드>의 첫 번째 책인 <이사 우파니샤드> 8행은 그 깨달음의 환희를 이렇게 말한다:

“자아는 만물을 감쌉니다.
한없이 밝고, 나눌 수가 없고, 죄에 물들지 않고,
지혜로우며, 어디에나 내재內在적이만, 동시에 초월超越적입니다.
우주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바로 자아입니다.”

나는 그런 에베레스트 산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오늘 그 산을 등하고 있는가? 오늘 오후에는 동네에 있는 유명산에 올라가봐야겠다.

<안개바다 위에 있는 방랑자> 독일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1774–1840) 유화, 1817, 98 cm x 74 cm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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