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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㉝문지방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㉝문지방

등록 2020.02.28 09:29

수정 2020.03.06 15:29

승화(昇華) ㉝문지방 기사의 사진

뉴스를 통해 하루 종일 들려오는 참담한 소식에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지,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실감한다. 늪으로 자꾸 빠져들어 가는 심정이다. 질병은 죽음을 연습하라는 표식이며, 죽음연습은 지금-여기를 영원한 순간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다. 죽음은 가장 끔찍한 질병이다. 우리가 생명을 부지하는 한, 죽음가까이 갈수는 있어도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죽음이 우리를 덮치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일요일(2월 23일) ‘코로나19’ 위기단계를 ‘심각深刻’으로 격상하였다. 이 전염병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 남긴 상처가 깊어, 상처 부위를 정확하게 정하고 그 부분을 소독하기도 힘들다. 더욱이 이 벌어진 상처를 다시 꿰매는 행위는 어렵고 그 상처가 아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이 심각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위기危機는 우리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할 때, 반드시 찾아온다. 이런 시점에 불안하고 무기력한 마음을 치료할 필요한 처방전이 있다. 자신을 위해 구별된 공간과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여, 자신을 깊이 응시하는 묵상이다.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왕관을 쓴 바이러스’가 2019년 나하고는 상관없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대한민국으로 조용히 침투하여 우리사회를 마비시킨다. 지구촌 저 구석에서 날아온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현대의 초고속 연결망을 통해, 상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태풍을 일으켜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우리가 ‘일어난 일’, 즉 현실을 변경할 수는 없다.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처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2020년, 왜 시점에 이 역병이 동아시아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내가 취해야할 삶의 모습을 상상하고 다짐해야한다.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도시문명을 통해, 문자와 문화를 창조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특히, 인간과는 전혀 다른 면역체계를 지닌 동물들을 사육하고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그들의 지닌 작은 미생물이 인간의 몸으로 침투하여, 인간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병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인류는 동물과 같이 살면서 자신의 면역체계를 수정시켜 진화해 왔다.

오늘날 문명이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21세기는 정교하고 신속한 초고속 기차와 초음속 비행기를 통해,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었다. 이런 교통시설이 없었던 예전에는 전염병이 한 장소에 국한되어, 다른 지역으로 전파가 힘들었을 것이다. 인류는 이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자신들이 구축한 교통망으로 한 곳에서 일어난 전염병이 다른 지역으로 금방 전파시키고 있다. 그것은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인간이라는 숙주를 통해 오지까지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퍼져 나간다.

2020년,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시험을 통과해야한다. 그 통과해야할 장소를 우리는 경계, 문지방, 혹은 현관과 같은 용어로 부른다. 이 문지방門地枋은 이전 단계와 구분하기 위해 돋으라져 솟아오른 구조물이다. 이 문을 통과하려는 자가, 기존의 방식대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넘어가기를 시도한다면,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이 문지방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터부의 공간이자 ‘현관玄關’이다. 현관은 원래 불교 사찰에서 세속의 공간인 사바세계와 천상의 공간인 극락세계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이곳에는 사천왕들이 무기를 든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서, 경내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이 공간은 바깥도 아니고 안도 아닌 ‘가물가물한(玄) 문의 빗장(關)’이다. 구도자가 몸과 마음을 아직 정결하게 하지 않았다면, 뒤 돌아서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이 현관에는 통과자를 지켜보는 괴물怪物이 존재한다. 그 괴물은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지킨다는 스핑크스처럼 인간에게 질문을 던진다.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 스핑크스가 등장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비밀을 찾기 위해, 역병疫病이 돌고 있는 테베로 진입할 것입니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의 길을 막고 질문한다. “아침에는 네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발로 걸으며,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냐?” 이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다시 말하자면,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테베 안에서 전염병을 퍼뜨렸던 스핑크스는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한다. 오이디푸스가 테베 안으로 들어가니, 역병이 멈춘다. ‘코로나 19’는 인간이 누구인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추적하라는 새로운 지침이다.

로마시대 스토아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질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인간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에 관해 다음과 같은 심리처방전을 선사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은 과거에 대해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다. 코로나19가 마련해 준 이 문지방門地枋에서, 나는 두발로 굳건하게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가? 아니 나에게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내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몰입하고 있는가?

<스핑크스>기원전 530년, 아테네대리석, 142.6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스핑크스>기원전 530년, 아테네대리석, 142.6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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