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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철 기자
등록 :
2020-07-27 15:34

금융권, 라임펀드 전액배상 결정 잇단 보류…속내는?

하나·우리은행, 전액배상 수용결정 연장 요청
신한금투·미래에셋 등 증권사도 사실상 연기
판매사들 배임 소지, 전액 배상 등 선례 우려
장기화 조짐…키코 사태 5차례 연장요청 전례

금융권이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 원금을 투자자에게 전액 돌려주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 수용 여부를 연기했다. 펀드 판매사가 투자금 전액을 배상한 전례가 없는데다 배임 소지가 있어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선 판매사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요구라는 분위기지만,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부담인 상황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라임 무역펀드 판매사들은 27일까지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권고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목한 4개 라임펀드 판매사 모두가 분쟁조정 결정을 사실상 연기 요청했다.

가장 먼저 연기를 결정한 것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21일 이사회에서 수락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답변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분조위의 결정을 수락할 경우 조정이 성립되고,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며 "분조위 결과 수락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고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권고한 라임자산운용 전액반환안을 논의한 결과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다음 이사회 일정까지 금감원에 답변을 연기하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와 신뢰 회복 차원에서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에서는 공감했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추가 확인과 좀더 심도 있는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투자와 미래에셋대우 역시 분조위 결과 수용 여부 결정 연기를 금감원에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투자와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이사회 일정이 맞지 않아 이같은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두 판매사는 결정 마감 시한을 넘길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앞서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달 30일 라임 무역금융펀드가 민법상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에 해당한다며 판매사인 이들 4개사의 100% 배상을 결정했다. 사상 최초의 투자금 100% 배상 결정이었다. 무역펀드 판매 규모는 우리은행이 650억원, 신한금융투자가 425억원, 하나은행이 364억원, 미래에셋대우가 91억원이다.

그런데 이들 판매사들이 모두 답변 연기를 신청한 것이다.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배임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조위 권고대로 전액 배상한 뒤 운용사에 대한 구상권 행사에서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주주로부터 배임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투자피해자들에게 원금 100%를 반환해준 이후 라임자산운용, 신한금투 등을 상대로 투자금 반환소송을 하더라도 배상 책임을 모두 묻기 어려울 수 있다. 배상금액이 많다는 점도 권고안을 수용하기 힘든 배경 중 하나다.

하지만 은행 등 판매사들은 금융당국과 대립각을 세운다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분조위의 라임 무역금융펀드 100% 배상 권고안에 대한 판매사들의 수용 여부에 대해 “은행들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금감원의 배상권고를 외면하기 쉽지 않다. 금감원이 사모펀드 판매사들을 대상으로 불완전판매 현장 검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눈 밖에 나서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조위의 결정은 권고 사항으로 법적 강제력은 없다. 판매사가 수용하지 않으면 배상 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추후 소송을 통해 다투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키코 사태와 비슷하게 보는 분위기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환율 급등으로 은행과 키코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키코를 판매한 6개 은행(신한, 우리, KDB산업, 하나, 대구, 씨티)이 4개 피해 기업들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이 금감원의 결정을 거부했다. 당시 신한, 하나, 대구은행은 다섯 번에 걸쳐 수용 여부 답변을 연기했다가 결국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은 2013년 키코 관련 재판에서 은행들의 손을 들어준 적이 있다. 키코 배상을 거부한 은행들은 당시 대법원의 판결에 의존해 ‘배상은 배임’이란 이유를 들며 배상을 하지 않았다. 현재 은행사들은 다른 145개 기업에 대한 자율배상을 위해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라임사태 역시 이 같은 키코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조위의 배상 결정은 강제력이 없는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키코 때처럼 금융사의 답변 연장 요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과거 ‘키코 사태’ 때에도 일부 논란이 일자 “당사자가 요청하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연장하는 것이 분쟁조정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입장을 낸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키코 때는 일부 배상이었음에도 수용하지 않았는데 판매사들이 100% 배상을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주현철 기자 jhchul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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