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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아부의 기술-생존과 자존의 경계에서

[김성회 온고지신 리더십]품위 있는 아부의 기술-생존과 자존의 경계에서

등록 2018.12.05 09:58

수정 2018.12.14 08:44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

“나는 임금을 섬기는 것에 예를 다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보고 아첨한다고 하는구나.” (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공자의 말은 아부의 불분명한 경계를 말해준다. 내가 하면 존경이고, 남이 하면 아부다. 겸손과 비굴, 아부와 칭찬, 진실과 아부, 평판과 아부, 일도단마의 판별이 쉽지 않다.

보기 나름이다. 눈금 하나만 삐끗해도 순식간에 칭찬 정량을 넘겨 아부가 된다. 누군들 새처럼 고공을 높이 날고 싶지 않았겠는가. 살다보면, 사노라면, 아니 살기 위해 새는 커녕 뱀이 되어 온몸으로 진흙탕 바닥을 박박 기며 온몸으로 상처를 입게 되는 게 사람살이다. 지문이 지워지도록 아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명줄보다 무서운 밥줄 때문에 지문을 지우고, 허리디스크가 걸리도록 허리를 펴지 못하며 굽신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조금만 더 굽혀서, 숙여서 살 것인가. 그렇지 못해서 부러질 것인가. 인생은 어차피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라 나쁨과 더 나쁨 중의 선택아니던가. 거기에서 조금 더 비빈 들, 지문이 조금 더 없어진 들 그게 대수겠는가. 나는 “직장인들의 지워진 지문을 볼 때 그와 비슷한 비굴한 동류의식”을 느낀다. 별로 웃기지도 않는데 과장되게 따라 웃는 헛웃음과 잔주름을 볼 때 창자가 투명해지는 묘한 아픔을 느낀다. 자존을 택하면 생존이 울고, 생존을 택하면 자존이 운다. 대부분 생존이 자존을 이기는게 인생살이다.

어차피 인생이 정의 vs 불의의 100대 0의 대결선택이 얼마나 있겠는가. 59대 41의 조금 더 나쁨vs 나쁨, 박빙의 선택 아니던가. 과장, 부장, 사장, 모두 한줄 앞의 완장에게 무력해진다. 가장의 이름으로 조금 더 비빈들 뭐가 그렇게 대수이겠는가. 내가 “김밥을 말지 못해” 물러난들 내 뒤에 올 사람이 나보다 더 강건하고, 그 바람에 리더를 변화시킬 것이란 걸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나름 슬픈 생활형 아부파들의 발언이기도 하다.

①책사형 아부···독심술 아부:상사 마음의 향방을 읽는다. 관심술과 관찰술을 병행한다.
일단 아부지능은 관심과 관찰이 기본이다. 상대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바람보다 빨리 읽고, 바람보다 빨리 누워 만족시킨다. 이때 중요한 것은 드러나지 않은 ‘숨은 실세’를 찾는 것이다. 복심이 누구인가를 나비처럼 찾아내 벌같이 쏘는 것이다.

측천무후때의 간신 양재사는 아부지능이 높았다. 군주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여도 그는 재빠르게 감지, 비위를 맞췄다. 군주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반드시 그 일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해 반대의견을 표했다. 또 군주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칭찬하여 군주의 비위를 맞췄다. 군주가 총애하는 인물을 극진한 아부로 대했다. 양재사는 측천무후에게 아부하기 위해 ‘그가 총애했던 미모의 남자 장창종에게 스리쿠션 아부를 했다. “6랑(장창종)이 연꽃을 닮았다고 하는 것보다는 연꽃이 6랑을 닮았다고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는 언사다. 측근에 대한 찬사를 통한 스리쿠션 아부는 기본이다.

제나라 재상 정곽군의 이야기다. 그때 왕후가 죽었다. 그 자리에 누구를 세워야 할지 모르자,그는 절대 아부지능을 발휘한다. 제위왕에게 귀한 옥귀고리를 바친 것. 다음날 궁궐에서 그 귀고리를 차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고 왕심을 읽은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왕후 후보로 세게 밀은 것이다. 귀걸이를 선물해 그 귀걸이를 누가 하고 있나 살폈다.

모공공기관 고위간부의 이야기다. 청사 로비에 대형그림을 걸어놓기로 결정이 됐다. 예술작품이 어느 정도 우열이 검증된 유명화가라면 그 다음 단계에선 전적으로 취향이 아닌가. 이 작품, 저 작품 어떤 것을 물어봐도 단체장은 고개를 저었다. 단체장 입장에선 어느 것 하나를 직접 낙점했다간 여러 가지 뒷소문이나 로비설등으로 곤란한 처지에 처할 수 있으니 딱 찍어서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이때 평소에도 영민(?)하기로 소문난 고위간부가 딱 그림을 찍어 단체장에게 의견을 여쭤봤다. 답은? 한번에 단방에 오케이였다. 비결은? 단체장과 그림 전시회를 가서 그가 제일 오래 서있으며 감상한 그림을 선택, 의견을 물은 것이다. 염화시중, 그것은 그냥 되는 것은 아니다. 촉각 시각 청각 온 감각을 다 동원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필요한 알파내공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다. 오리는 물밑에서 활발히 물질을 한다고...비록 눈치 코치 품 엄청나게 들였을지라도 짐짓 하나도 힘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치한 것처럼 꾸민다.

②집사형···사생활 챙기기 아부:상사의 소소한 사생활을 챙긴다.
아부에서 사생활 챙기기 역시 빠질 수 없다. 보통 사람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약발효과는 가장 높다는 것이 동서고금 공통적이다. 기본형이 아닌 특수부가형이라고나 할까. 이런 아부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상관의 생일쯤은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의 이야기냐고? 아니 그리스 때도 이미 있었다. 2000년전 트라야누스 로마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내놓은 표현을 보라. 고대 로마의 문학가이자 법조인이자 자연 철학자인 소플리니우스가 황제를 위해 바친 카드내용이다.

“기도하건대 님이시여, 당신께서 이 생신을 기리시어 앞으로도 더 많은 날이 가능한 한 행복하게 찾아오기를, 그리고 평안과 건강을, 아울러 영원한 찬사와 함께, 당신이 겹겹이 새로운 업적을 더한다는 그 찬란하고 영예로운 명성을 드높이시기를(소 플리니우스 ‘서한집’)

팔로워들이 가장 비루하게 느끼고, 하기 싫어하는게 집사형 아부다. 요즘은 웬만한 강심장 상사 아니면 못시킨다. 언제 인터넷 올라올지 모르지 않은가. 일단 하면 가장 감사를 넘어 의존관계가 형성된다. 모기업의 임원 이야기다. 그는 회장 자녀의 입학, 유학은 물론 진로에 관한 정보를 시시콜콜 다 알아서 제공했다.

유학정보는 물론 기숙사, 심지어 그 지역내 교포 교회정보와 진로 관련 인사 조언과 멘토링까지...그야말로 A~Z까지 집사, 교사 역할을 모두 했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그는 “상사 부하간 관계도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는 쓸데없는 일을 같이 할 때 끈끈해진다.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개인적 케어야말로 가까워지고 서로 신임한다는 확실한 매개”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③용사형···상사의 적은 나의 적이다:상사에 대한 비방을 좌시하지 않는다.
<논어>를 읽어보면 공자는 자로에게 야단을 가장 많이 친다. 처음 읽을 때는 자로가 가장 덜렁거리고 실수를 많이 해서 그런 것으로 보았다. 자세히 읽어보면 공자의 자로에 대한 야단에는 애정이 담겨있다. 안회는 모범생이긴 하지만 편하게 대하기 어려운 제자였다. 자로는 불량학생(?)이긴 하지만 애정이 가는 편한 제자였다. 신체 경호는 물론 심기경호까지 다했다. 요즘말로 아주 열렬한 공빠였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내가 자로를 제자로 두고부터 욕먹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자로에 대한 칭찬으로 볼 수도, 질책으로도 볼 수 있다. 충성의 강도는 상사(조직)의 비난에 대한 반응의 정도이다. 반목의 단계는 같이 욕한다. 중립은 침묵한다. 강한 충성은 비난을 좌시하지 않고 반발한다.

상사(조직)가 있는 자리에선 보호, 없는 자리에선 그의 입장을 강력히 옹호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상사를 공식적인 자리에서든, 비공식적 자리에서든 비난의 멘트를 날리게끔 좌시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충성행위는 어떻게든 상사의 귀에 들어가게 돼있다. 3호의 심기경호 아부는 상사의 마음을 든든하게 그를 믿음직하게 여기도록 한다. 친구의 친구는 따뜻하다. 하지만, 적의 적, 같은 적을 가진 관계는 친구를 넘어 동지로 든든하다. 같은 적을 가지고, 상사에 대한 비난을 좌시하지 않는 것은 확실한 아부다. 상사의 적을 같이 적으로 응대, 강력반발하는 것, 그것은 끈끈한 동지애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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