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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과 유예를 구분하라

[김성회 온고지신 리더십]신중과 유예를 구분하라

등록 2019.08.01 09:40

수정 2019.08.29 10:01

신중과 유예를 구분하라 기사의 사진

알 지(知)의 반대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리석을 우(愚)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어리석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 남의 의견에 개방적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도 자신이 미덥지 못해 주위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해 더 포용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지(知)의 반대는 의심할 의(疑)다. 호의불결(狐疑不決). 여우는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하며 머뭇거리고 결행하지 못한다는 말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의사결정에 시간이 걸리는 사람은 신중하다거나, 성격이 게으르기보다 의심하는 성격이 원인인 경우가 더 많다. 의사결정 장애를 일으키는 의심의 의(疑)는 의심할 의(疑)의 원래 형태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갈림길에 서서 머리를 흔들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비수 비 匕는 지팡이를, 발 필(疋)은 멈추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골똘히 생각하다이란 본뜻에서 ‘의심하다’라는 뜻이 파생됐다. 화살 시(矢)는 화살과 소 우를 뜻한다는 주장이 함께 있다.

갈림길에서 자신의 소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몰라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모습, 혹은 굼뜬 소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의심하고 망설이는 것, 화살 시(矢)를 글자 그대로 화살로 보는 것, 혹은 아이子로 보고 어린 아이가 비수와 화살을 들고 있는 모습에 위험해질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에서 의심하다는 의미 등 주장이 다양하다. 또 화살이 어디를 향해 날아갔는지 알지 못하여 발을 땅에 딛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양을 그대로 본 뜬 글자라고도 한다. ‘의(疑)’는 ‘화살을 만들면서 길고 짧음을 가늠하지 못해 망설이는 상태’를 나타낸다. 뭐가 긴지 짧은지를 분별하지 못해 당혹스런 상태라는 뜻이다. 다양한 주장을 관통하는 것은 의심은 무지가 아니라 망설임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예전에 모 CF에 조직의 상사들에 대한 풍자를 담아 “그분께만 가면 곰삭을 대로 곰삭아 홍어가 되기 일보 직전인 나의 보고서들이여, 끌어안고 일을 묵히는 그대, 그대는 청국장인가, 국장인가‘란 내용이 있었다. 보고서를 보내면 함흥차사로 가타부타 대답이 없이 시간이 지체되는 상사를 ’청국장‘에 비겨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어디 보고서뿐이겠는가. 리더가 의사결정을 묵히고 미룰 때 직원의 애간장을 타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직의 긴장감과 속도계를 떨어뜨린다.

흔히 일을 미루어 결행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유예(猶豫)라 한다. 이 말은 ‘노자’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猶)는 원숭이이고 예(豫)는 코끼리로 둘 다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동물들을 상징한다. '유(猶)'는 매사 의심이 많고 조심스럽다는 고대의 원숭이과 동물이다. 유혜약외사린(猶兮若畏四隣), 즉 '원숭이는 마치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다'라는 뜻이다.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거나 나무에서 내려와 먹이를 먹을 때에도 늘 신중하여 사방을 끊임 없이 둘러보며 조심스러워 한다는 뜻이다.
'예(豫)'는 본디 고대의 덩치가 큰 코끼리과 동물인데 역시 매사에 조심스럽고 신중했다고 한다. 예언약동섭천(豫焉若冬涉川), 주저하는 것이 코끼리가 마치 겨울철 강물을 건너는 듯하다)에서 유래했다. 무거운 덩치의 '코끼리가 마치 겨울철에 언 강을 건너는 듯하다'란 뜻이다. 겨울철에는 강이 얼어붙어 온갖 동물들이 건너다니지만, 코끼리는 항시 신중하다보니 꽁꽁 얼어붙은 강을 건널 때에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조심스러워했다는 뜻이다. 원래는 신중하다는 뜻이지만 지금은 도가 지나치게 조심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리더에게 조심성과 신중함은 필수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조심성’을 지나치게 발휘하다보면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일찍이 공자도 성격이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노나라 계부 계문자가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세번씩이나 생각한 다음에야 실행에 옮긴다”는 말을 듣고는 “재사가의(再斯可矣. 두번 정도만 고려하면 괜찮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느라 지나치게 신중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판단이 섰다면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지워내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출신의 IT재벌 CEO J는 전 세계에 걸쳐 별장을 두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몇 년전 방한했을 때, 한국에 며칠밖에 머무르지 않았는데 그 사이 강남에 몇십억 저택을 샀다는 말을 듣고 그를 인터뷰하며 물었다. “한국 부동산 물정도 모르는데 작은 돈도 아닌데 그렇게 큰 돈을 들여 덜컥 계약을 할 수 있는가.” 이 같은 나의 질문에 그는 “덜컥하는 투기가 아니라며 자신이 전 세계에 부동산을 투자할 때 확인하는 세밀한 체크리스트를 갖고 있는데 그 조건에 맞았기 때문에 계약을 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미국의 前국방장관 콜린 파월은 “정보의 범위가 40~70% 사이에 들면 직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을 기회가 40% 미만일 정도로 정보가 적으면 행동을 취하지 말아야 하지만, 100% 확실한 정보를 갖게 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때론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는 수도 많다. 리더가 결단을 내리기 힘든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대결인 경우보다 더 좋고 덜 좋은 것,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사이의 결정인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시간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나름대로의 기준과 원칙이 명확히 서있느냐이다.

당신은 모든 정보와 재료가 100% 완비될 때까지 미루고 있는 청국장 상사는 아닌가. 의심 많은 원숭이와 코끼리처럼 돌다리를 두들기고 두드리느라 건너갈 타이밍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무조건 신속하느라 졸속처리를 해서도 안 되지만 늘 신중해서 타이밍을 놓치는 것도 문제다. 그럴 때 오히려 장고 끝에 악수를 놓는 실수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신속과 졸속, 신중과 유예, 그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유무 차이다. 신속이 기준이 없으면 졸속이 되고, 신중이 기준이 없으면 늘 미루는 유예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속도 자체가 아니라 본인의 기준을 갖고 있느냐이다. 기준을 가진 채 타이밍을 재고 있으면 신중이지만, 그저 의심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유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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