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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㉚ 생명력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㉚ 생명력

등록 2020.02.05 09:36

승화(昇華) ㉚ 생명력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서른 번째 글의 주제는 ‘생명력’이다.


생명력(生命力) ; 올 봄엔 나를 존재하게 하는 ‘거룩한 씨앗’ 을 만나자


자연은 자신의 비밀이 밝혀지길 기다리는 호기심이다. 내가 가만히 응시하고 인내를 가지고 관찰하면 할수록, 아주 조금씩 자신이 간직한 태곳적 비밀을 조금씩 알려준다. 자연은 그런 나를 마다한 적이 없는 관대한 주인이다. 우리는 가만히 쳐다보지 못하고 조용히 듣지 못한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림소리와 욕망과 소비를 부추기는 방송들로 정신이 사납다. 반면에 자연은 언제나 조용하고 친절하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나를 거절한 적이 없는 내 삶의 터전의 원래 주인이다.

이번엔 이렇게 허무하게 겨울이 가버린 것인가? 작년 같으면 북한강 전체가 얼어붙는 기상천외한 음악소리가 하루 종일 동네를 울렸다. 올해는 그런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얼었던 시냇물이 풀려 봄을 재촉하듯 졸졸졸 흘려 내린다. 한동안 보지 않았던 고니들도 소나무 가지에 위험하게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리들은 고개를 수면 밑으로 들이밀어 먹이를 찾는다.

산 중턱에 앉아 북한강이 만들어 놓은 첩첩 산들을 바라본다. 누가 저 변화무쌍한 산들을 만들었는가? 봄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겨울 산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산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한 적이 없다. 시간의 지배를 받은 만물은, 매일 매일 다른 모습을 탈바꿈한다. 우리가 올라탄 거대한 우주선 지구는 하루 평균 시속 1667km를 스스로 한 바퀴 돌고, 10만7160km 속도로 태양주위를 공전한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300㎞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그 움직임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구가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 절묘한 중력의 신비한 마술로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살고 있다.

전광석화와 같이 돌고 달리는 지구에 올라탄 우리자신도 그 못지않게 변한다. 먼 훗날 개발될 성능 좋은 현미경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세포분열을 극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 변화는 지구의 공전 속도만큼 빠를 것이다. 우리 몸속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유전정보인 마이크로바이옴은 세포수의 두 배 이상이며 그 안에 숨겨진 유전자 정보는 100배 이상이다. 이들의 생멸과정은 우주의 탄생만큼이나 복잡할 것이다.

오늘 아침 강가는 오늘도 남다르다. 조용히 눈을 감고 한참 있었다. 저 멀리서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바람이 불어온다. 봄바람 신인 제퓌로스가 어디에선가 입김을 불어내고 있다. 처음엔 뺨에 스치는 정도가 미약했으나 점점 더 거세진다. 잔잔하던 강물 표면이 왼편으로 누워 잔물결들을 수 없이 끊임없이 창조해낸다. 강 중간에 생긴 소택지沼澤地 갈대들이 왼편으로 비스듬히 누워 연신 춤을 춘다.

겨울 내내 바싹 마른 갈색 잎들을 간직한 높다란 신갈나무도 강바람을 열렬히 환영한다. 신갈나무는 ‘스으으’ 소리를 내면서 잎들을 가지에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흔들리더니 점점 강도가 세져 ‘싸아아’ 소리를 내면서 결사적으로 잎들을 붙잡는다. 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이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은 실제다.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생명은 언제 생겼는가? 그 창조된 순간을 본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석도 불충분하다. 우리는 그 숭고한 순간을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주는 46억년전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태양과 같은 새로운 별들이 생겼다. 우리가 이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이유는 달에서 가져온 돌이나 유성으로 떨어진 돌들을 동이원소 연대측정을 통해 45억6천만년으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그 후 커다란 유성이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과 부딪쳤다. 이때 만들어진 두 개의 행성이 달과 지구다. 지구는 그 후 거의 5천만년 동안 서서히 식어 내부는 뜨거운 용암으로 되어있지만 표면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를 만들었다.

학자들은 최초의 박테리아 화석을 35억년전으로 추정한다. 생명이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반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번개가 바다를 쳐서 생물이 등장할 수 있는 원시적인 화학성분들의 결합물이 되었다는 ‘원시스프’이론과 같은 이론이 있다. 특히 미국 옐로우스톤과 같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지열웅덩이의 뜨거운 물방울에서 원형세포가 등장했다는 것이 최근 가설이다.

이 방울은 탄소, 수소, 산소, 인, 유황 그리고 질소로 이루어졌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동일한 유전정보, 즉 똑같은 생화학 원소를 공유하기 때문에 하나의 공동조상으로부터 유래했다. 그 후 단백질, 핵산, 그리고 유전암호를 통해 한 개의 막 안에 5000개의 단백질, 그리고 DNA와 RNA를 지닌 눈으로 볼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자기보존체제가 되었다. 지구에서 최초의 생물이 이같이 등장했다니.

신화에 등장하는 생명의 등장 이야기만큼 황당하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책에 등장하니 고려할만한다. 이 내용도 우리가 지금은 과학이라고 말하지만 후대 인류는 더 정교한 설명으로 이 가설을 신화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이렇게 등장한 세포는 그 후 동물과 식물로 진화하여 6500만년전에는 공룡에 이르렀다.

우리는 ‘살아있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왜 지구를 제외한 다른 행성에서 아직 생물을 찾을 수 없는가? 그 이유는 물질과 에너지가 중용中庸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 고체화되어 차갑게 되거나 기체화되어 뜨거워 생물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과의 절묘한 거리와 달과의 신비한 공생관계로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제어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내가 눈을 돌려 관찰하는 수많은 나무와 수풀들은 살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것인가? 혹은 살이 있으면서 죽은 것인가? 무엇이 그 식물을 살아있게 만드는가? 무엇이 저 나무를 살아있게 만드는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진달래 가지에 연분홍 꽃들이 달릴 것인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살아있음’이란 자라고 늙고 죽어가는, 생명의 자연스런 과정을 포괄하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생명’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활동, 즉 변화를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활력의 부재, 즉 ‘무생물’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못쓰게 될 뿐이다. 자발적으로 싹을 내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형할 수 없다.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씨앗에 존재하는 생명력의 생존기간에 대한 연구해왔다. 그들은 지구표면의 20%나 차지하는 시베리아와 같은 영구동토층의 노출로 드러난 씨앗을 통해 눈에는 볼 수 없는 생명력을 경이롭게 추적하였다. 생명력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건이 2012년에 발견되었다. 러시아 학자들은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 ‘실레네 스테노필라’Silene Stenophylla라고 불리는 시베리아 토종 꽃 씨앗들을 발견하였다.

다람쥐와 같은 설치류가 겨울을 나기 위해 콜리마 강 둑 근처 땅에 이 식물의 씨들을 다발로 숨겨놓았다. 그들은 이 씨앗을 영구동토층 지표면에서 38m 지점에서 거의 진공상태로 발견하였다. 탄소연대측정에 의하면 이것들은 3만2000년이나 되었다. 그 주변에서 빙하시대 동굴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맘모스, 들소 그리고 코뿔소 뼈가 흩어져 있었다.

학자들은 다람쥐가 갈아먹지 않는 온전한 씨앗을 유리관에 배양하였다. 그들은 생명력이란 씨앗이라는 물질 속에 존재하는 영구적인 어떤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신념이 없었다면, 이런 시도는 비이성적이다. 이들의 믿음이 확인 되었다. 3만2000년이나 된 씨앗 안에 존재한 생명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겉보기에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것 같은 딱딱하고 말라 비틀러진 씨앗이 움직였다. 그 안에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보전한 생명력이 3만년이라는 바다와 같은 시간을 건너 생존하였다, 그전에 발견된 가장 오래된 생명력을 가진 씨앗은 이스라엘 마사다에서 발견된 2000년전 대추야자나무 씨였다.

‘실레네 스테노필라’의 씨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나를 존재하게 만들어주는 ‘거룩한 씨앗’이 존재한다. 이 씨앗에 존재하는 생명력이 나의 몸, 정신, 그리고 영혼을 매일 매일 새롭게 유지해준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것은 맨 처음 생명과 연결되어 내 몸 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이 봄에 그 생명력을 만나고 싶다.

3만2천년 전 씨앗에서 꽃피운 실레네 스테노필라3만2천년 전 씨앗에서 꽃피운 실레네 스테노필라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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