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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고통의 연속” 관치·정치금융에 우는 은행권

[NW리포트|은행은 괴롭다]“매일이 고통의 연속” 관치·정치금융에 우는 은행권

등록 2021.02.23 07:01

수정 2021.03.10 16:08

정백현

  기자

금융권 지난해 연간 순이익, 전년比 답보 상태현실 모르는 정부·정치권, 은행 괴롭히기 지속이익 줄었음에도 “은행은 코로나 수혜업” 낙인금융지원 장기화에 부실 가능성도 갈수록 커져“은행은 화수분 아냐···정부·정치권 도와줘야”비대면 거래 정착에 은행 점포 폐쇄 대세 부각금융 취약계층 보호 미명 하에 통폐합 길 막아“손해 감수하며 은행 사업하라는 것이냐” 불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내 뱅커스클럽에서 5대 금융지주 회장단과 만나 간담회를 했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사진=금융위원회 제공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내 뱅커스클럽에서 5대 금융지주 회장단과 만나 간담회를 했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연초부터 은행권은 괴롭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출 증가로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낼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당국은 자본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며 배당 자제를 강권하고 나섰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간 정치권은 은행권이 코로나19로 인한 반사이익을 봤다며 당분간 은행이 이자를 거둬들일 수 없게끔 조처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금융에 치이고 관치금융에 뺨 맞은 은행권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정상적 영업 수단’ 이자 수취가 범죄행위? = 은행들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중순부터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월 19일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코로나19의 국난 속에서도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받는 금융업은 대표적인 코로나19 반사이익 업종”이라며 “당분간 은행이 이자를 못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홍 의원의 발언 이후 은행권은 경악했다. 은행들이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예상보다 많은 돈을 번 것은 맞지만 마치 은행의 이자 수취를 마치 범죄행위처럼 본 정치권의 시각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자 수취는 은행의 정당한 영업 방식이다.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그 돈을 갚는 과정에서 이자를 받는 것은 전통적인 은행의 이익 창출 수단이다. 남들보다 많이 벌었으니 못 번 이들을 위해 정상적인 영업마저 중단하라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힐난인 셈이다.

은행들은 속이 탄다. 생각보다 이자이익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정치권에서는 은행을 옥죄기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각 금융지주의 지난해 경영 실적을 살펴보면 4대 금융지주 자회사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의 이자이익은 2019년보다 크게 늘지 못했다.

KB국민은행의 지난해 이자이익이 2019년보다 6.1% 상승한 6조7548억원에 이르렀을 뿐 신한은행(5조9276억원, 1.0% 증가), 하나은행(5조3078억원, 2.0% 감소), 우리은행(5조2910억원, 0.5% 감소) 등은 2019년의 수준을 겨우 유지하거나 되려 이익이 줄어들었다.

이자이익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은행 대출금리도 낮아진 탓에 이자 수취 자체로 돈을 벌 수 있는 기반이 약해진 탓이다. 은행권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정치권은 그저 눈에 보이는 대출 증가만 보고 이자 수취 중단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금융지주 4사의 실적을 보면 기존의 고속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대응과 자본 관리 차원에서 충당금을 충분히 쌓아둔 탓에 이익 규모가 줄었다.

은행들이 이익 감소를 감수하면서도 충당금을 쌓은 것은 미래를 위한 대비 행보로 볼 수 있다. 충당금을 쌓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대출 부실이 터진다면 금융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는 만큼 충격 흡수를 위한 대비를 충분히 해둔 셈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움직임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자본 관리를 위해 배당 성향을 낮추라는 엄포까지 내렸다. 결국 신한금융지주를 뺀 3개 지주사는 지난해 말 실적 기준 결산 배당 성향을 기존보다 5~6% 정도 낮춘 20%로 결정했다.

은행권과 주주들의 집단 반발이 들불처럼 일어났지만 금융당국은 해외 신용평가사의 전망까지 적극 인용하면서 “지금 배당을 낮추면 대외신용도에도 긍정적 영향이 미치게 되며 해외 선진국은 우리보다 더 강한 배당 축소 정책을 쓰고 있다”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논란 확산이 좀처럼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금융당국은 “일부러 은행을 괴롭히기 위해 배당 성향을 낮추라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금융회사는 배당 문제에 매우 민감한 외국인 주주들이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다. 이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배당 축소를 지시한 것은 의도적인 은행 경영 방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토로했다.

◇끊이지 않는 포퓰리즘 정책 압박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여파로 은행권의 지난해 경영 실적이 2019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은행권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지만 울고 싶은 은행권을 더 때리는 이들이 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다른 업종에 비해 은행이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했다는 이유로 코로나19를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내놓으라는 압박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바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이익 공유제’ 참여 문제다. 금융업이 코로나19로 인해 반사 혜택을 본 업종인 만큼 사회를 위해 피해 업종과 이익을 나누라는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은행권은 당황하고 있다. 지난해 경영실적에서 보듯 이익의 규모가 개선되지 못했거나 오히려 줄어들었음에도 은행권을 ‘코로나 수혜업종’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더구나 이미 은행들이 지난해 봄부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위한 금융지원을 대규모로 진행했는데 이에 대한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 조치가 두 번이나 연장됐다.

당초 지난해 9월 종료될 예정이던 금융지원 조치 시한은 올해 9월까지 연장됐다. 최초 지원 시점부터 계산한다면 1년 6개월짜리 지원인 셈이다. 코로나19의 확산세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지만 기약 없이 길어지는 대출 연장 조치에 은행들은 홀로 끙끙 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지원 조치 장기화로 인한 금융 부실 우려다. 돌려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하면 은행 차원에서도 자금 융통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자금 중개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붕괴가 우려될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어려움을 겪는 사업자들의 형편을 먼저 살펴야 하는 것도 은행의 몫이지만 은행 금고는 화수분은 아니다”라며 “정부와 정치권은 은행의 금고가 마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은행도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님 끊긴 영업점···문도 마음대로 못 닫는다 = 최근 은행들의 경영 계획에서 가장 골치 아픈 현안을 꼽으라면 단연 오프라인 영업점의 통폐합 문제가 꼽힌다. 비대면 금융 거래가 대세로 정착한 시대의 흐름과 경영의 효율성을 고려한다면 빠른 폐점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는 3월부터는 은행 영업점을 없애기 전 영업점 폐쇄로 인해 소비자들이 겪게 될 여러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사전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이달 초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가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 절차’를 일부 개정했기 때문이다.

개정된 절차에 따르면 앞으로 은행은 해당 영업점 폐쇄 결정 이전에 은행 본부의 소비자보호부서 관계자와 은행과 직·간접적 관계가 없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전영향평가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사전영향평가 결과 영업점 폐쇄로 인해 해당 지역 금융 소비자들의 불편이 크다고 판단되면 점포 영업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영업점을 출장소로 전환하는 것을 우선으로 검토한다.

반대로 폐점으로 인한 소비자 불편이 크지 않다면 영업점을 폐쇄하도록 하고 우체국 등 영업점 관내 인근 타 금융기관으로 은행 업무를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금감원은 은행 경영공시 항목을 개정해 지점과 출장소를 합한 영업점 숫자 외에 점포 신설·폐쇄 현황을 추가하는 세부 정보를 매년 공시하도록 은행업 감독규정 시행세칙을 고치고 반기별 은행별 점포 운영 현황을 종합 분석해 언론에 정기적으로 알리게 됐다.

이처럼 은행 영업점의 폐쇄와 관련해 당국이 강력한 평가 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영업점 통폐합 속도와도 무관치 않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점포수는 6406개다. 4년 전인 2017년 말 기준 점포수가 7101개였고 2019년에는 점포 7000개 선이 무너졌다. 지난해 1년 동안 문을 닫은 은행 영업점 수는 303개에 달한다.

물론 은행권 스스로 사전영향평가 도입에 수긍했기 때문에 이 제도가 적용되는 것이지만 내심 마음은 불편하다. 은행 영업점 폐쇄로 인해 얻게 될 은행의 이익보다 소비자의 불편이 더 크다면 여러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은행 영업점 운영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지속적인 영업점 통폐합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은행 거래를 이용하는 전체 금융 소비자 10명 중 9명은 이미 비대면 거래로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은행 영업점은 문을 열어둘수록 오히려 손해인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점포도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내야 하지만 영업점 방문객 숫자의 지속적 감소로 내방 고객을 통해 창출되는 수익보다 점포 운영비용이 더 많이 나가는 경우가 있다”며 “손해를 보면서 사업을 하고 싶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 영업점 내방 고객의 대부분은 60대 이상 노년층인데 노년 인구 밀집 지역은 어떤 쪽으로 평가를 해도 은행 영업점 존치 쪽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대안도 없이 무작정 영업점 통폐합을 막는 당국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은행 영업점 숫자를 외부에 정기적으로 공시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정부 시책이 영업점 숫자를 최대한 유지해 금융 접근성 취약계층을 보호하자는 기조인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따르라는 사실상의 압박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일각의 지적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학교에서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의 명단을 가정통신문으로 만들어서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여주겠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라면서 “은행의 영업점 관리 현황은 은행의 자율에 맡겨야 할 일이지 강제로 관리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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