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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본 원칙을 어긴 사람들

오피니언 기자수첩

[정백현의 직격]기본 원칙을 어긴 사람들

등록 2021.05.10 11:55

정백현

  기자

reporter
기자는 요즘 골프에 심취해 있다. 물론 구력도 길지 않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점수도 안 된다. 소위 ‘백돌이 골퍼’가 기자의 수준이다. 그러나 여태껏 살면서 해본 운동 중에 골프가 가장 재미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거의 매일 저녁 집 근처 골프연습장에서 연습에 매진하면서 산다. TV 속 선호채널 1순위도 요즘은 단연 골프 채널이다.

연습장에서 연습할 때나 실제 필드에서 라운딩을 시작할 때 생각하는 것이 있다. 티칭프로나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공부한 스윙 자세의 복기가 결코 아니다. ‘기본은 꼭 지키자’는 원초적 다짐이다.

▲타격 전 목표지점 정확히 보고 조준하기 ▲백스윙 과하지 않게 들기 ▲스윙 때 상체 일으키지 않기 ▲퍼팅 때 다리 움직이지 않기 ▲제대로 못 쳐도 웃고 다음 홀 가볍게 준비하기 등등. 골퍼라면 알고 있는 기본들이다. 저 중에 하나만 망각해도 골프는 ‘꽝’이 된다.

문제는 실제 잔디 위에 서면 몇 번을 곱씹던 다짐을 희한하게도 모두 잊는다는 점이다. 급한 마음에 타구 방향 조준도 없이 팔에 힘이 들어간 채로 공을 띄운다. 그렇게 띄운 공은 제대로 맞지 않거나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되고 결국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뱉는다.

머리 위에 전구가 쨍하고 켜진 순간 ‘아차!’하고 기본 원칙 준수 다짐의 망각을 후회하지만 이미 공은 지나가 버렸고 타수는 더 잃었다. 그렇게 또 100타를 넘기고 말았다. 하찮은 기본을 망각하면 이렇게 된다.

18홀 라운딩을 모두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지난 경기를 복기하면 ‘기본은 꼭 지키자’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그리고 “기본 원칙만 잘 지켰어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을텐데”라는 후회감이 무수히 밀려오기도 한다.

기본 원칙을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비단 골프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원만하게 풀어나가려면 기본을 지켜야 한다. 적어도 스스로 세운 원칙이 있다면 그것을 옳게 지키는 것이 일의 성과와 대외적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최근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중소벤처기업부 등 일부 정부 부처가 2017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에 간접투자 형태로 500억원이 넘는 돈을 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책은행과 정부 부처는 벤처·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모태펀드에 출자했는데 이 펀드가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로 투자됐다. 여러 번에 걸쳐서 가상자산 투자 지양을 원칙처럼 강조해던 정부와 국책은행이 스스로 원칙을 망각하고 여러 절차를 돌아서 사실상 가상자산 거래소에 직접투자를 단행한 셈이 됐다.

펀드에 낸 돈이 가상자산 거래소로 흘러가는 것을 몰랐을 리 없겠지만 설령 몰랐다고 하더라도 정부 스스로 정해놓은 원칙을 어긴 것이라면 이를 제대로 시정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책은행은 원칙도 어겼고 이를 제대로 시정하지도 않았다.

가상자산 투자를 부정한 재테크 방식으로 매도하고 비판하는 정부가 뒤로는 자신의 원칙마저도 뒤집은 꼴이 됐다. 이런 논리라면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다. 아울러 국민에게 신뢰를 받기도 어렵다. 소위 말해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정부가 만약 ‘한정된 규제 안에서 마음껏 투자하라’고 원칙을 세워둔 상태에서 가상자산 거래소 투자를 단행했다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 원칙을 깨거나 원칙도 없는 상태에서 제멋대로 일 처리를 하면 무슨 일이든 이렇게 탈이 나기 마련이다.

지난 일을 덮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 아울러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확실한 기본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그대로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그래도 국민이 믿어줄까 말까 하는 상황이다.

‘기본 원칙을 꼭 지키자’는 다짐은 간단하지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원칙을 잘 지키면 본전 이상의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기면 본전도 못 찾고 후회만 하게 된다. 몇십만 번을 되풀이해도 부족하지 않은 이 다짐. 백돌이의 무한루프에 잠겨 허우적대는 기자에게나 잘못된 행보로 뭇매를 맞는 정부 모두가 진심으로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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