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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테마 에세이|<바가바드기타>] ⑭ 제1권 19행

“당신은 어떤 소리를 내고 계십니까?”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이마와 손목에 <신명기> 6장 5절에 등장하는 성구가 담긴 ‘텔필린’tefillin 즉 경구함은 매고 다닌다. ‘쉐마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아! 들어라!”라는 의미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예였던 이집트를 탈출하여, 정적만이 지배하는 사막으로 들어갈 참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라는 뜻이다. 유대교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 신과 만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신의 음성을 듣기 위한 정적이다. 그 정적이 묵상, 기도, 명상이다.

공간空間은 한 건물이 꼭 필요한 장소로 비움이다. 그런 비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물은 객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 공간은 건축물을 독립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자궁이다. 말은 인간이 입을 벌려 소리를 통해 만드는 음성 건축물이다. 말을 가치가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말과 말 사이에 공간이 필요하다. 이 공간이 ‘침묵沈默’이라는 소리다. 침묵이라는 용광로를 거치지 않은 말은 대개 자화자찬이거나 변명이다.

인간은 말하기 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들어야 한다. 신은 누구에게나 그 사람의 양심良心을 통해 말을 건낸다. 양심은, 자신이 누구인지 깊은 명상을 통해 알아내고, 지금-여기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의 심성을 일깨워 들려주는 신의 목소리다.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창의적으로 독립적이다. 우리는 핸드폰을 통해 상대방을 인식한다. 그 화자가 입을 통해 밖으로 내는 소리는 기계를 통해 나오는 소리와 다르다. 개그맨들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 감쪽같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도 하지만, 그 기간은 한정적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COVID-19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화자의 입놀림을 추적할 수 없다. 우리는 마스크를 통해 나오는 상대방 목소리의 톤, 억양, 음색을 통해 그 사람의 의중을 가늠할 수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리가 있다. 하나는 머리에 달린 귀로 들을 수 있는 외부의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내부의 소리다. 외부의 소리는 동물들도 듣는다. 아니 동물들이 더 멀리 정확하게 듣는다. 그러나, 내부의 소리는, 오랫동안 침묵을 수련한 자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왜냐하면 내면의 소리는 침묵을 통해 표현하기 때문이다.

요가수련자는 명상을 통해, 물질세계에 있는 귀로 들을 수 있는 영역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밖으로 나오는 행위를 ‘엑스타시’ecstasy라고 부른다. 자신이 흔히 들을 수 있는 상태(stasy)로 부터 밖으로 나온(ec-) 경험을 이르는 용어다. 그 몰입은 요가수련자로 하여금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도록 만들다. 심장이 뛰고, 심장에서 나오는 피가 온몸을 돌며, 숨이 코를 통해 들락거리는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가만히 응시하면, 이런 떨림이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깊은 몰입으로 들어가면, 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바로 들림과 안 들림의 경계에 있는 삼매경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바가바트기타> 제1권 19행은, 아르주나가 이끄는 판다바 군대의 침묵의 소리, 삼매경에서 울려나는 소리를 묘사한다. 이 소리는 드리타라슈트라가 이끄는 카우바다 군대의 시끄러운 소리를 다음과 같이 압도한다.

sa ghoṣo dhārtarāṣṭrāṇāṁ
사 고쇼 다르타라슈뜨라남
hṛidayāni vyadārayat
흐리다야니 브야다라트nabhaś cha pṛithivīṁ cāiva
나바슈 차 드리씨빔 카이바
tumulo abhyanunādayan
투불로 아비야누나다얀

(직역)
“드리타슈트라 아들들의 심장을
그 소리가 산산히 파괴하였다.
심지어 그 소리가
하늘과 땅을 뒤 흔들었다.”

(의역)
“아르주나 군대의 나팔 소리는 오랜 수련을 거친 침묵의 소리다.
그 소리가 크세트라 들판에 서 있는 드리타슈트라가 이끄는 카우바라 군대의 기세를 꺾었다.
침묵의 소리는 하늘과 땅을 뒤 흔드는 태곳적 소리다.”

아르주나 군대의 소리는 내면의 소리를 상징하고 드리타슈트라의 소리는 외부의 소리다. 우리가 외부의 이런저런 소리에 경도된다면, 우리는 그 소리에 장난에 춤추는 꼭두각시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가 내면의 소리를 명상과 묵상으로 수련한다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양심에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복종한다면, 우리가 오늘 가야 할 구간을 완주할 수 있다. 소리는 아침이면 기꺼이 만물을 위해 침묵하며 벌떡 일어서서(立) 떠오르는 해(日)와 같다. 나는 태양처럼 침묵으로 말하고 있는가?

이미지 확대thumbanil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1982, 사진작가-건축가 히로시 스키모토 (1948-)
gelatin silver print, 47.3 cm x 57.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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