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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테마 에세이|<바가바드기타>] ⑱ 제1권 27행-30행

“당신은 주저(躊躇)하십니까?”

인간은 주관적이다. 주관은 가치에 있어서 이중적이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로부터 구축한 편견이나 아집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뼈대이기도 하다. 인간은 모태에서 나와 자신이 던져진 가족과 공동체의 이념이나 세계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 주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이 객관적인 지적이며 영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주관이 아집이란 사실을 깨닫고, 타인과 어울리고 더 나아가 타인을 배려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객관적인 교육을 수련한다.

객관이란, 일정한 사항에 대해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편견이 없는 시선이다. 로마황제이며 스토아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상록>이라는 책의 원제목은 그리스어로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ōn이다. 이 제목을 번역하면 ‘그 자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들’이란 뜻이다. ‘헤아우톤’은 3인칭 단수 재귀대명사로 3인칭이 된, 자신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신은 자신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그것’ 혹은 ‘그’였다. 그런 자신을 추구하고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관을 넘어선 터부의 공간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어 전치사 ‘에이스’eis가 그런 뜻이다.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심연을, 자신의 최선과 목숨을 담보로 용감하게 경계를 통과하여 입장해야 한다. 그래야, 그 곳에서 숭고한 자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들이 등장 한다.

객관이란, 세상을 쉽게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나눔을 초월하여 그 중간에서 서서 양측을 모두 연민의 눈으로 보려는 훈련이다. 아르주나는 판다바 군대의 대장으로 카우바라 군대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일 찰나이지만, 자신을 이쪽도 저쪽도 아닌 객관적인 시선과 지혜를 가지고, 곧 일어날 끔찍한 전쟁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아르주나는 전쟁터 한 복판에서 객관적인 시선, 승화된 시선을 획득하지 못하고, 주관적인 시선 안에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이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르주나는 전투가 일어날 평원의 중간에 서서, 자신의 주관 안에 있는 두 진영을 관찰한다. <바가바트기타> 제1권 27행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양쪽을 모두 관찰하려는 아르주나의 시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śvaśurān suhṛdaścāiva
수바슈란 수흐리다슈차이바
senayor ubhayor api
세나요르 우바요르 아피
tān samīkṣya sa kaunteyaḥ
탄 사미크슈야 사 카운테야흐
sarvān bandhūn avasthitān
사브반 반둔 아바스티탄

(직역)
“쿤티의 아들이 장인들과 동료들을, 두 진영에서 모두 (보았다.)
그는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의 모든 친족들은 진열했다.”

(번역)
“쿤티의 아들인 아르주나는 두 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보았다. 그들은 그의 장인들과 동료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다시 깊이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친족들이며,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투태세로 진열해 있었다.”


아르주나는 깊은 요가수련을 통해, 통찰력과 자기절제의 능력을 지녔다. 그는 오랜 묵상수련을 통해 선과 악, 아군과 적군, 나와 너를 초월한 새로운 지경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생경한 지경에서, 자신과 자기 군대가 싸울 대상은, 자신의 친족이며 자신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카우바라 군대는, 적군이 아니라 아군의 일부이며 연장이다.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행위는 아직도 주관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자다.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에 의해, 초월적인 객관적인 지경에 도착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양쪽이 모두 친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 친족도 사실 자신의 주관이 만들어 낸 허상이다.

이 이야기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요가 수련자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심리적인 갈등이기도 하다. 위 문장에 등장하는 장인들과 동료들은, 수련자의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의미한다. 좋은 습관은 올바른 일을 행하기 위한 발판이지자만, 나쁜 습관은 반대로 악행을 유도한다. 아르주나가 이끄는 판다바 오형제와 그의 군대는 좋은 습관이고 드리트라슈스트라 왕이 이끄는 카우바라 군대는 나쁜 습관을 상징한다. 명상은 수련자의 좋은 습관이 나쁜 습관을 정복하려는 정신적인 수련이다. 만일 인간이, 자기개선을 위한 수련을 무시하고 수동적으로 나쁜 습관의 영향을 받는다면, 자신의 욕망대로 살게 된다. 그러나 좋은 습관이 등장하여 나쁜 습관을 물리치면, 그(녀)의 자신의 최선을 숨겨져 있는 삼매경으로 진입할 수 있다. 아르주나는 나쁜 습관도 자신의 일부란 사실을 깨닫고 제거하기를 주저한다. 그 주저하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kṛpayā parayāviṣṭo
크리파야 파라야비슈토
viṣīdann idam abravīt
비쉬탄 이담 아브라비트dṛṣṭvemaṁ sva-janaṁ kṛṣṇa
드리슈트베맘 스바자남 크리슈나
yuyutsuṁ samupasthitam
유유트숨 사무파스티탐

sīdanti mama gātrāṇi
시단티 마마 가트라니
mukhaṁ ca pariśuṣyati
무캄 차 라리슈트야티
vepathuś ca śarīre me
베파투슈 차 샤리레 메
roma-harṣaś ca jāyate
로마하르샤슈 차 자야테


<바가바트기타> 제1권 28-29행


(직역)
“한없는 연민으로 가득 차, 실망하며 말했다. “오, 크리슈나여! 나의 친족들이, 전투하려고 서로 다가오는 것을 보니, 나의 사지가 가라앉고, 나의 입이 마르며, 나의 몸이 떨리고, 나의 머리카락이 곤두섭니다.”

(번역)
“아르주나는 한없는 연민으로 가득 찼다. 그는 이 광경을 보고 깊은 실의에 빠져 크리슈나에게 말했다. ”오, 크리슈나야! 나의 친족들이, 전투하려고 서로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나의 사지는 힘이 풀려 걸을 힘이 없고, 나의 입이 바싹바싹 마르며, 나의 몸은 부들부들 떨립니다. 심지어 나의 머리카락이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하늘을 향해 곤두섭니다.”


아르주나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이며 영적인 전쟁에서,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거룩한 행위를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그가 아직도 이기심에 근거한 나쁜 습관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그는 육체를 지닌 존재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각성해야하는 수련자이며,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는 구도자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육체에 대한 애착이 그의 양심을 장님으로 만들었다. 현대인들이 섬기는 유물론은 인간은 육체를 지닌 물질이라고만 가르친다. 육체의 쾌락과 편리함이 선이고 정의다. 죽음만이 물질에 대한 애착을 단절시킨다. 인간은 육체이상이다.

요가수련자는 명상을 통한 완전한 육체적인 자유, 해탈을 얻기 위해서, 물질적인 욕심을 파괴해야만 한다. 아르주나는 친족과 친구를 통해 얻는 정체성 안에서 안주하고 싶다. 성인처럼 신을 진정으로 추구 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즐겼던 쾌락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르주나는 자신의 친족과 친구들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다음은 <바가바드기타> 제1권 30행의 직역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gāṇḍīvaṁ sraṁsate hastāt
간디밤 스람사테 사스타트
tvak caiva paridahyate
트박 차이바 파리다흐야테
na ca śaknomy avasthātuṁ
나차 샥노미 아바스타툼
bhramatīva ca me manaḥ
브라마트비 차 메 마나흐

(직역)
“간디바가 손으로부터 떨어지고, 나의 입이 타들어간다. 나는 나 자체로서 남아있을 수 없다. 나의 마음이 방황한다.”

(번역)
“나의 활 간디바가 손에서 힘없이 떨어진다. 나의 입이 타들어가 나는 나 자체로서 남아있을 수 없다. 나의 마음이 이러 저리 방황하는 것 같다.”


이 구절은 요가수련의 길에 들어선 구도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묘사한다. 요가수련을 시작한 사람은 자신의 신체가 건강해지고 정신이 맑아져 행복하고 열정적이다. 그(녀)는 수련을 지속하면서 오감을 자극하는 쾌락은 자신의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영적인 해탈을 위해 육체의 쾌락을 제거하는 행위는 수련자를 혼동에 빠뜨리고 당황시킨다.

농부가 곡식을 위한 씨를 뿌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잡초를 제거하는 행위다. 잡초를 제거하면, 땅이 메말라 보이나, 씨가 발아하여 싹을 내고 줄기를 내기 적당한 시절에 풍성한 곡식을 맺는다. 인간 의식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의미하고 중독을 자아내는 습관들이 처음부터 제거되지 않으며, 농부가 원하는 추수를 거두지 못한다.

아르주나는 금단현상과 같이, 자신의 신체의 변화를 열거한다. 손이 떨리고 피부가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방황하기 시작한다. 아르주나는 자신의 친족과 동료를 살해하는 전쟁을 치러야하는가? 요가수련자는, 자기수련을 위한 자신에게 중독이라는 습관을 구축하는 쾌락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나는 이미 습관이 되어 나의 일부가 된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을 과감히 없앨 수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주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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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위 빨강,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 (1903–1970) 유화, 1957, 230.6cm × 152.7cm × 3.8 cm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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