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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팔때’ ‘고철 살때’ ‘官 납품할때’ 모두 담합?···“과징금 내다 망할 판”

‘철근 팔때’ ‘고철 살때’ ‘官 납품할때’ 모두 담합?···“과징금 내다 망할 판”

등록 2022.01.25 15:39

수정 2022.01.25 16:54

이세정

  기자

[NW리포트]‘공정위는 철강 회사를 싫어해’12개사 관급 철근값 담합 조사, 심사보고서 발송과징금, 매출액 10%까지 부과···최대 4천억 추산2012년부터 10년간 5차례, 잦은 과징금에 부담↑업종 특수성 고려 X, 中 저가수주 방어 목적 커

‘철근 팔때’ ‘고철 살때’ ‘官 납품할때’ 모두 담합?···“과징금 내다 망할 판” 기사의 사진

공정거래위원회가 또다시 국내 철강업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공정위는 국내 대형 철강사부터 소규모 압엽회사까지 12개사가 철근 가격을 담합했다고 보고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철강사 담합 규제는 최근 들어 연례행사처럼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철강사들이 철스크랩(고철)을 구매할 때 가격을 담합했다며 과징금 3000억원을 부과했고, 2018년에도 철근 가격 담합을 이유로 1200억원을 물렸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철강산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특히 철강업 특성상 비슷한 철근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 무조건 ‘담합 프레임’을 씌운다는 지적이다.

◇관급 철근값 담합 적발···과징금 최대 4000억대 = 공정위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한국철강 등 대형 제강사 6곳과 압연업체 6개사를 대상으로 관급 철근담합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압연업체는 제강사로부터 원재료가 되는 빌렛을 구매해 2·3차 가공을 거쳐 철근을 만든다.

공정위는 이들 12개사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약 5년간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관급 철근 입찰에서 가격 담합행위를 했다고 보고 있다.

조달청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철근 공급액은 약 4조1600억원이다. 공정위 과징금은 매출액을 기반으로 하는데, 앞선 2018년 민간 철근 담합 당시 적용한 과징금 부과율 3%로 추산하면 최소 1200억원대의 과징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담합 과징금의 경우 관련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매길 수 있는데, 이 경우 4000억원대로 그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

특히 공정위 사무처는 과징금과 함께 담합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일부 업체에 대해 검찰 고발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다음달까지 제재 대상 기업들로부터 의견서를 받고, 전원회의를 열어 과징금 수위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잦아지는 담합 규제···10년간 5차례, 2년에 한 번 꼴 = 공정위의 철강사 담합 적발 횟수는 점점 잦아지는 분위기다. 10년 전인 2012년부터 공정위가 적발한 철강사 담합 행위는 총 4차례다. 이번 담합까지 포함하면 5차례인데, 사실상 철강사들은 격년 주기로 공정위 이슈에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2000년대에는 10년간 단 2차례만 담합 사실이 적발된 것과 비교하면, 3배 넘게 증가한 빈도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해 1월 국내 철강사 7개사가 3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은 ‘고철 구매 담합’이다. 공정위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대한제강 등 7개 제강사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8년간 총 155차례 접촉해 철스크랩 구매 기준 가격과 변동 시기 등을 합의했다고 봤다.

철스크랩은 재활용이 가능한 고철과 폐자동차 등을 가공·정제한 것으로, 제강사들은 이를 재활용해 제품으로 만든다. 철스크랩 가격 결정권은 전체 공급물량의 70% 이상을 구매하는 대기업 제강사에 있다.

2018년에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대한제강 등 6개 제강사가 2015년 5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약 20개월간 30여 차례 이상 모임과 전화 연락 등으로 물량 할인폭을 일정 수준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격 담합을 벌였다고 봤다.

공정위는 이들 제강사가 합의한 달의 철근가격 할인폭이 전달보다 축소됐다며 실거래가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했다. 또 합의 후 시간이 지나 효과가 떨어지면, 재합의를 반복하면서 담합 효과를 지속했다. 공정위는 총 11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검찰에도 고발했다.

2017년 ‘가스공사 강철 파이프 입찰 담합’은 세아제강 등 6개사가 10년간 물량 나눠먹기로 7350억원의 이득을 취했다며 92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이다.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철강업계 특수성 이해 못해···업체간 조직 구성 정부가 권고 = 업계 안팎에서는 공정위가 국내 철강산업의 생리와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철근은 특별한 기술력을 요하지 않는 철강재로, 업체간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질 이유가 없다. 한 철강사가 가격을 올릴 경우 안 팔리거나 나머지 철강사들도 가격을 올리게 된다. 가격을 인하해도 비슷하다. 원자재 가격에 따라 납품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유사한 가격 흐름은 불가피하지만, 공정위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히 철강사들이 서로 회의체를 조직하는 것은 정부 권고로 시작됐다. 정부는 철강사와 건설사 가격 분쟁이 30년 넘게 반복되자, 2011년 철근가격 인상 여부와 폭을 결정하는 가격 협의체를 구성했다. 정부가 나서 철강사 가격 담합을 조장한 것과 다름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건설사들은 내부 자재구매 담당자간 단체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이하 건자회)가 참여하고, 철강사 측에서는 대표사 1곳이 참여해 철근값 협상을 벌인다. 철강사 대표와 건자회가 협상으로 기준가격을 정하고, 이 기준가격에서 각 철강사가 자율적인 할인폭을 정해 실제 판매가격을 결정한다.

공정위가 담합을 의심하는 시기가 협의체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업계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철강사 입장에서는 할인폭을 조정하는 것이 시장 가격 폭락을 막을 최소한의 조치다. 국내 철강업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에 불어닥친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저성장 늪에 빠졌다. 특히 중국산 저가 철근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국내 철강재 가격 체계도 무너졌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 정부가 자국 철강제품의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철강업계가 다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중국 정부는 원자재 가격 인상을 저지하기 위해 수출 철근에 부여하던 수출증치세 환급을 폐지했고, 강력한 탄소 중립 정책을 펼치며 철강 생산량을 축소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철강공급이 줄었고, 국산 철강재 가격은 이제서야 안정화되고 있다.

철스크랩 가격 담합 관련해서도 공정위가 단순하게 접근했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철스크랩은 고철을 수집하는 소상과 수집된 고철을 모으는 중상, 제강사에 납품하는 대상 등 수백곳이 넘는 업체가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각자 적정한 구매 가격을 제시하는 만큼, 제강사 입맛대로 가격을 담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격 담합이 있었더라도 실제 시장가에는 반영되기 힘든 구조다.

◇10년 암흑기 막 탈출···경영부담 늘고 소모적 피해 가중 = 철강업계는 10년 넘게 이어지던 암흑기에서 간신히 탈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전방산업의 경기 회복과 철강 수요 증가, 중국 철강 감산 정책 등으로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낸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사들은 그동안 수요업계의 경영위기를 감안해 가격인상을 최소화해 왔다. 자동차용 강판 가격은 2017년 하반기 이후 동결됐고, 조선용 후판 가격 역시 조선사들의 수주 가뭄을 고려해 수년간 인상하지 않았다.

지난해 자동차업계와 조선업계 업황이 개선되자 4년 만에 공급 가격을 올렸다.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상승한다는 점도 반영됐다.

하지만 공정위의 거세진 담합 규제에 철강업계 중압감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철강사들은 일찌감치 공정위가 비슷한 철강재 가격을 내세워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걱정했고, 이는 현실화됐다. 업황 회복으로 실적이 개선되더라도, 내실을 다지지 못하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

장기간 지속되는 소송전과 소모적인 인·물적 피해, 기업활동 위축 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철강업계는 공정위가 행정제재에 나설 때마다 법정으로 향했다. 공정위는 2012년 냉연과 아연도금, 컬러강판 가격 담합을 적발하고 7개사 291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포스코는 담합 협의를 부인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포스코강판과 현대하이스코(현 현대제철) 등도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약 4년간 법정다툼을 이어갔다.

2017년 ‘가스공사 파이프 담합’건의 경우는 최종 판결이 2019년 나왔고, 2018년 ‘철근 가격 담합’도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지난해 담합 규제에 대한 법정공방은 아직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 발송 후, 업체들로부터 의견서를 받는다. 제출 기한은 한 달이다. 의견서에는 담합에 대한 회사 측 소명 내용이 담겨야 하는데, 최대 10년 전 자료를 뒤져야 하는 철강사 입장에서는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 철강사들이 충분한 소명을 하지 못한 채 과징금 처분을 받는 만큼, 잇따른 소송전을 치룰 수밖에 없는 이유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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