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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파친코 신드롬과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김헌식 김헌식의 인사이트 컬처

파친코 신드롬과 글로벌 인사이트

등록 2022.04.02 08:00

수정 2022.05.26 07:19

파친코 신드롬과 글로벌 인사이트 기사의 사진

BBC를 포함해 유수의 세계 언론이 극찬 일색이다. 관련 전문 평점 사이트는 전세계 화제작 '오징어 게임'보다 높게 점수를 매겼다. 애플 TV 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가 호평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개별성을 통해 보편성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실 말은 쉬워도 이를 구현하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결국 그 속에 우리의 길도 있다. 개별성 차원에서 보자면, 1915년부터 1989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일본, 미국에 오가며 한국인 4세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인 이야기가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에 등장하니 당황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인들이다. 이런 이야기가 애플TV 플러스에 등장하다니 놀라워도 한다. 색감, 카메라 워킹, 화면 구성 등에서 미드 스타일의 콘텐츠에 한국말 수준이 한국산 외국 현지 촬영 드라마 같다. 그야말로 한국말의 작렬이고 향연이다.

반대로 늘 다루던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곧 익숙한 스토리다. 그들에게 디아스포라는 삶이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역사가 바로 이주민의 역사다. 세계의 금융은 물론 학술 그리고 영상 산업까지 좌지우지하는 유대인들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처럼 강제로 자기 땅에서 떠나야 했던 아픈 상처와 고통의 이주민 역사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이 오히려 세계 유수의 언론들에서 극찬을 불러일으켰다.

또 하나의 개별성을 통한 보편성 코드도 있다. 그것은 바로 여성 서사다. 마을 사람들이 평생 혼자 살 거라던 장애인 남편(훈이)을 선택한 어머니(양진)의 강단이 있었기 때문에 훈은 행복했고 선자(김민하)도 버텨낼 수 있었다. 유부남 한수의 아이를 밴 선자의 용단은 어려운 시기 보편적 가치를 지키며 여성들이 어떻게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 월가에서 일하는 손자 솔로몬 백(진하)이 일본 재개발 사업에 난관에 부딪힌 것도 결국, 재일 교포 한인 노인 여성의 한국적 가치관 때문이었는데 이조차 선자의 역할이 컸다. 미국의 쟁쟁한 전문 금융종사자들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그 특유의 한국적 정서의 보편적 교감은 이미 영화 '미나리'를 통해서 잘 알려진 바가 있다.

그 작품을 만든 것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이번 파친코도 한국계 미국인들이 만들어 중간 가교 구실을 제대로 했다. 그것은 외연의 확장이며 한국의 콘텐츠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산업 주류영역으로 진입하는데 수월성을 높인다. 애플이 그 가능성을 봤다는 것은 콘텐츠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사실 이런 '파친코' 유형의 소재와 스토리라인은 넷플릭스 콘텐츠 특징과도 결이 다르다. 마니아틱한 열혈 팬들의 장르를 롱테일 전략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TV 플러스는 70여 편, 넷플릭스는 어느새 4천여 편의 원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다. 점유율 5%대 25%의 싸움에서 애플TV 플러스가 선택한 것은 고퀄의 콘텐츠였다. 그 고퀄의 콘텐츠는 열혈 마니아를 넘어서서 좀 더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성을 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차이점은 현실을 대하는 태도다. 리얼리즘에 함몰되는 넷플릭스 콘텐츠는 장르적 속성 때문에 희망보다는 우울을 디스토피아의 현실에 더 초점을 맞춘다. 만약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파친코'기 만들어졌다면, 더 어둠도 우울했을지 모른다. 애플이 론칭했고, 오스카상을 거머쥔 영화 '코다' 도 장애인 가정의 차별과 아픈 현실을 넘어 희망과 대안을 말한다.

'파친코'에서도 나라를 빼앗긴 현실에서 유부남을 임신한 절망적 상황에서 고향마저 떠나야 했던 여성 주인공이 낯선 나라에서 삶을 영위해가야 하는 현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서도 지금도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아픈 현실을 일반 사람들이 더 뼈아프게 겪고 있는 나날이다.

현실에 대한 계몽보다는 위안과 격려가 필요하다. 절망의 현실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어려운 시기를 감내하고 돌파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소구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K 콘텐츠는 어느 곳을 지향해야 할까. 장르적 콘텐츠와 보편적 콘텐츠, 그 둘을 포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나라라는 사실을 이제 더욱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간 기회와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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