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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산업은행 회장 브리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차재서의 뱅크업

산업은행 회장 브리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등록 2022.05.12 08:28

수정 2022.05.12 11:02

차재서

  기자

reporter
지난 5년간 국민과 동고동락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문을 닫았다. 새롭게 문을 연 행정부가 대(對)국민 소통 정책에 변화를 줄 것임을 암시하는 일종의 예고편이 아닐까 싶다.

'국민청원' 홈페이지가 사라진 데 개인적인 서운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스템을 도입하고 운영한 것은 전 정부이고, 앞으로의 방식은 전적으로 정책을 책임질 쪽이 판단할 일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민청원', '광화문1번가', '국민신문고' 등 민원 체계를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새 정부도 소통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무언가를 준비할 것이라 믿겠다.

다만 마음 한 구석엔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정부가 각 부처와 공공기관을 아우르는 소통채널을 닫아버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 탓이다. 이번 정부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과거 취재진을 모아놓고 질문을 받지 않거나 촬영도 녹취도 못하게 했던 어떤 정치인의 모습을 목도하지 않았나.

장황한 얘기를 꺼낸 것은 유지되길 바라는 채널이 있어서 그렇다. 산업은행 회장의 현안 브리핑이다.

4년8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최근 산업은행을 떠난 이동걸 전 회장은 굵직한 현안이 생길 때마다 온·오프라인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결정이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무산 등 무거운 사안이 생기면 어김없이 언론과 마주해 진행 경과를 설명하고 은행의 입장과 목표를 제시했다.

또 이 전 회장은 조선·해운·자동차, IT,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산업 영역을 진단하고 한국 경제의 도약을 바라는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간담회는 현안 브리핑을 넘어 국내외 금융·산업 트렌드를 한 눈에 확인하고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소통의 장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물론 탈도 많았다. 따로 열거하진 않겠지만,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이 반감을 일으키면서 구설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전 회장의 행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고, 이를 계기로 사안이 공론화하면서 사회 전반에서 건전한 토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거센 반대 앞에선 이 전 회장도 본인의 의견을 고집하진 않았다.

구조조정 등 현안을 대하는 산업은행의 태도도 바뀌었다. 정책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으로서 필요한 내용을 공개하고, 정치권 또는 다른 정부 부처와 얼굴을 붉힐지라도 할 말을 했다.

기우일 수 있겠으나, 더 이상 이런 자유분방한 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데 미리 안타까움을 표한다. 정부로부터 말을 아끼라는 시그널이 떨어진다면 공공기관인 산업은행으로서는 보조를 맞춰야 할 수밖에 없어서다. 가끔씩 딱딱한 자리에서 만나 약속된 코멘트만 건내거나 정작 중요할 땐 뒷짐만 지고 있던 옛 회장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근거와 목적, 사전 논의도 없이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모습도 장차 발생할 일련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사실 누군가 산업은행과 회장이 자신들의 업무와 생각을 일일이 대외에 공개해야 하냐고 반문하면 딱히 돌려줄 만한 얘기는 없다. 은행과 회장의 임무 안에 '정기적으로 국민 앞에 나서서 브리핑을 해야 한다'는 식의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국책은행이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우리 사회와 산업이 한층 건강해진다면,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어디에 있냐고 묻겠다. 기업 구조조정과 혁신 성장 등 산업은행 본연의 업무에 국가경제, 국민의 안위와 직결되지 않은 부분은 없다. 그런 만큼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수년 전까지 경제·금융 현안을 조율하기 위해 열었던 '서별관 회의'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남은 것은 회의 내용이 아니다. '서별관'이라는 장소와 참석한 정부 핵심 인사, 국가 기간산업의 몰락이라는 키워드다. 혹자는 깜깜이 행정이 정책 실패와 관치금융이라는 오명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조선·해운업 등 산업이 무너지는 가운데도 회의 내용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산업은행 회장도 이 부분을 함께 고민해주시길 기대한다. 전임 회장의 말처럼 '논리적 논쟁 없이 주장만 되풀이되는, 내용 없이 껍데기만 있는' 그런 소통은 지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의 설득도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정부를 받아들일 국민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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