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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대화 원한 관객, 그리고 입소문의 힘

[변호인 1000만] 상식과 대화 원한 관객, 그리고 입소문의 힘

등록 2014.01.20 09:47

김재범

  기자

 상식과 대화 원한 관객, 그리고 입소문의 힘 기사의 사진

딱 10년 전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가 개봉하고 누적 관객 수 1000만을 넘어섰다. 한국 영화 시장에선 불가능한 숫자로 불리던 1000만의 벽이 깨진 첫 번째 사건이었다. 그 의미와 원동력이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됐다. 이후 두 달 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실미도’를 넘어섰다. 한 해 그것도 단 두 달을 기점으로 1000만 영화 두 편이 쏟아졌다. 영화 제작이 산업으로 완전히 격상되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후 10년이 흘렀고, 1000만 영화는 정확하게 한국영화 시장에 9편(‘아바타’ 제외)이 등장했다. 그 마지막에 ‘변호인’이 이름을 올렸다. ‘변호인’을 앞선 8편의 한국 1000만 영화들과 달리 보는 시각들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상업영화의 외피 속에 묘한 시대적 통찰력이 관통하고 있다. 독립영화 특유의 자유분방함도 느껴진다. 극명한 호불호가 나뉜다. 유일하게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다. 때문에 정치적 관점으로 달려드는 사람들도 많다. ‘변호인’의 1000만 돌파 원동력은 무엇일까.

 상식과 대화 원한 관객, 그리고 입소문의 힘 기사의 사진

◆ “상식과의 대화를 원한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상식적이며 가장 당연한 이 한 마디가 지난 한 달 대한민국을 가장 울린 한 마디가 됐다. ‘변호인’은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긴 영화다. 관객들은 극중 배우 송강호의 이 한 마디에 이유를 알지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복받침에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변호인’은 이 한 마디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얘기하면서 2014년의 지금이 ‘변호인’의 이 한 마디를 주목한 것은 가장 상식적인 이 명제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이 뚜렷한지 그렇지 않은지 해답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대학가를 휩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변호인’의 흥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극중 송우석 변호사가 말한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며 무언가 틀렸다는 것을 지적한다. 결국 30년의 시간차를 두지만 ‘변호인’은 현재를 말하고 있다. 과거를 말하고 있는 역사성을 띠고 있는 스토리가 지금의 상황과 맞물리며 현재성을 띠게 됐고, 그 안에서 관객들은 무언가 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변호인’과 답답한 현실에 대한 대화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과거 군부정권 시절의 서슬퍼런 독재를 경험한 50대 이상의 중장년층부터 ‘변호인’을 찾았다. 여러 온라인 예매사이트 자료를 보면 이들의 점유율이 다른 영화에 비해 상당히 높다. 더욱이 영화 흥행의 기준점으로 불리는 30대 이상이 50%를 넘었다. 눈길을 끄는 점은 10대부터 20대의 비중도 40%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 하수상한 시절의 혼미함을 ‘변호인’ 속 상식과의 대화를 통해 관객들은 어떤 자기만의 해답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개봉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변호인’의 좌석 점유율은 40%에 육박한다. 아직도 ‘변호인’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 관객들이 많다.

 상식과 대화 원한 관객, 그리고 입소문의 힘 기사의 사진

◆ 송강호가 곧 ‘변호인’이었다

사실 ‘변호인’은 송강호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을 영화다. 이미 1000만 명이 봤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하고 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가장 극명하게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다. 더욱이 정치적인 사안에서 극도의 민감함을 보이는 국내 정서상 ‘변호인’은 제작 자체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배우 송강호는 ‘변호인’ 출연을 거부했었다.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인 제작자와의 뜻이 통했다. 제작자인 위더스 필름 최재원 대표는 얼마 전 김영애 인터뷰 자리에서 잠시 만나 “모든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특히 송강호에게는 더 없이 감사하다”며 그의 출연에 고마움을 전했다. 그에 화답하듯 송강호는 극중 ‘송우석’ 변호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닌 인간 ‘송우석’으로만 그려냈다. 힘을 줄때와 뺄 때, 비워야 할 곳과 채워야 할 곳을 아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의 눈빛과 대사 몸짓 하나에 관객들은 감정을 이입시켰다.

‘송우석’이란 인물은 배우 입장에선 상당히 위험성이 큰 캐릭터다. 우선 실존 인물이다. 그 인물이 지지와 반지지로 정확하게 갈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여기에 아직도 그에 대한 평가는 진행 중이다. 자칫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 수위 조절이 잘못되면 오롯이 ‘리스크’를 받아내야만 한다. ‘송우석’은 ‘평범’과 ‘비범’의 경계선에 걸쳐진 인물이다. 발 하나를 몇 센티만 옮겨도 ‘영웅’으로 미화가 된다. 그것을 송강호는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그는 뉴스웨이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송우석의 얘기다. 상식이 통하지 않던 시대에 살던 그가 그 상식을 깨닫고 되면서 모든 이들에게 그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얘기다”면서 “비상식적 사회에 분노한 한 인간의 변화로만 봐주면 좋을 것이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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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배급의 통근 결단

‘변호인’의 투자 배급사인 NEW의 결단이 ‘변호인’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영화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선 NEW는 설립 6년을 맞는 투자 배급사다. 출범 당시만 해도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에 도전장을 던진 그저 그런 꼬마 신생사였다. 하지만 규모와 장르에 구애 받지 않는 투자 배급으로 탁월한 선구안을 자랑했다. 꾸준히 ‘중박’ 이상의 흥행작을 내놨고, 지난해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7번방의 선물’을 선택해 첫 1000만 영화로 만들어 냈다.

‘변호인’은 연출을 맡은 양우석 감독이 이미 10년 전부터 갖고 있던 시나리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영화화가 미뤄졌고, 이후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책상서랍 속에 묵혀 두고 있었다. 그러다 제작사인 위더스필름 최재원 대표와 함께 의기투합해 영화화를 시작했다.

NEW측은 2012년 겨울 때 ‘변호인’의 영화 제작 소식을 듣고 재빨리 투자와 배급을 결정했단다. NEW 측 관계자는 “다른 조건은 크게 따지지 않았다”면서 “내부적으로 시나리오를 검토했고, 만장일치로 투자 배급이 결정된 작품이다”고 말했다. ‘변호인’ 언론시사회 당시 주연 배우 송강호에게 “(이 영화 출연 배경이) 혹시 급전이 필요했나”란 굴욕적인 질문마저 나왔었다. 바꿔 말하면 ‘변호인’은 투자와 배급 자체에서 정치적 색깔이 너무도 뚜렷하기에 제작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출연 배우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힘’의 ‘패널티’가 있을 것이란 시각도 지배적이었다. 결국 NEW 측은 이런 모든 부담감을 끌어안고 오롯이 작품의 완성도에만 집중한 채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NEW측은 ‘변호인’이 갖고 있는 ‘정치적’ 모양새를 지워내는 데 주력했다. 일단 ‘보면 달라질 것이다’란 판단이었다. 일반적으로 개봉일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일반 시사회를 진행한다. 하지만 ‘변호인’은 20일 전부터 진행했다. 그것도 제주도부터 시작해 역으로 서울까지 치고 올라오는 전국 규모의 시사회였다. 배우들 모두가 시사회 무대에 섰다.

시사회가 열리기도 전 ‘변호인’은 이른바 ‘평점 테러’의 희생양이었다. 여러 포털사이트 평점란에 0점부터 1점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전국 시사회가 열린 뒤 평가는 반전됐다. 앞서 언급한 ‘한 번 보면 틀려질 것’이란 NEW측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개봉 한 달여 만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NEW의 과감한 투자 결정과 발 빠른 입소문 전략이 ‘변호인’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된 ‘정치색’을 지워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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