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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고한사북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지 보여줄게”

[기자수첩]강원랜드-고한사북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지 보여줄게”

등록 2015.07.16 15:05

최광호

  기자

강원랜드-고한사북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지 보여줄게” 기사의 사진

강원도 양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2011년 2월말과 3월초 두 차례에 걸쳐 휴가 나온 병사가 고등학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 지역에 주둔하는 두 개 사단은 그렇지 않아도 바가지요금에 대한 장병들의 불만이 컸던 데다 폭행사건까지 연이어 터지자 장병보호를 명분으로 외출외박을 전면 중단시켰다. 휴가 나오는 장병들도 군 차량으로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고 또 태워 갔다. 군인이 이끌던 상권은 파리만 날렸다.

양구에 비상이 걸렸다. 군수와 군의장, 교육장까지 피해 병사를 위로 방문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는 등 한바탕 소동 끝에 외출외박 통제가 해제됐다. 이처럼 접경지역에서 휴가 셔틀버스 운행이나 외출·외박 통제는 군대가 지역 상권과 지역 주민들을 길들이는 방법으로 종종 쓰였는데 그나마도 최근에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이달 초 정선군 고한에서는 강원랜드 직원 A씨(30)가 지역 주민 B씨(28)로부터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육군 소장 출신의 한 임원은 실·팀장 회의에서 “고한 사북에서의 회식을 중단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군대식 지역 주민 길들이기를 신선하게도 강원랜드에서 선보인 것이다. 회사 임원으로서 부하직원을 아끼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아니면 ‘니들이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지 이참에 보여주겠다’는 오만한 발상의 발로였을까.

여하튼 접경지역과 고한·사북이 닮은 것은 분명하다. 접경지역 군대가 그렇듯 이 지역에서는 강원랜드가 상권을 이끌고 있고 물가도 비싸다. 또 그곳에 각종 규제와 사격소음이 있다면 이곳에는 숱한 유흥업소와 퇴폐업소, 사채업자, 전국에서 모인 도박중독자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이들의 범죄와 자살 사고가 있다.

그런데 고한·사북의 강원랜드와 접경지역의 군대는 존재하는 이유가 다르다. 군대는 남북분단이라는 국가적 필요에 의해 그곳에 배치된 반면 강원랜드는 폐광으로 지역경제 파탄 위기에 놓인 지역 주민들이 정부와의 투쟁을 벌여 세워진 회사다.

쉽게 설명하자면 ‘폐광지역 주민들 먹고 살게 해주기 위해 세워진 회사가 강원랜드’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임원은 회사 간부들에게 주민들 먹고 살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셈이다.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가 존재하게 된 경위와 이유를 아예 모르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해법이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 임원이 이 회사 창업주가 이병철인지 이승엽인지 헷갈려하면 온전히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말이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당연하게도 지난 15일 아침 고한읍번영회와 사북읍번영회는 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일제히 발표했다. 특히 고한읍번영회는 함승희 사장의 공식 사과와 해당 임원의 사퇴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함승희 사장이 사과하지도, 해당 임원이 사퇴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같은 날 오후 열린 고한·사북·남면·신동 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 긴급 대책회의에는 해당 임원은 고사하고 지역협력팀 차장이 참석했다.

같은 시각 본지와 정선신문의 보도 이후 타 매체들의 후속 보도가 이어져, 어쩌면 해당 임원의 사과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희미하게나마 보이고 있다. 시끄러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 이후의 전개이고, 강원랜드를 세운 주역인 이 지역 주민들, 지역 사회단체의 사장 사과·임원 사퇴 요구에 대한 강원랜드 대처는 거기까지였다. 강원랜드는 조속히 사장을 포함한 전 임직원에 대한 심도 깊은 사사(社史) 교육을 시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덧붙여 이 지역 사회단체들도 이렇게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간 일부 인사들의 납품이나 인사 등 각종 부탁을 가장한 청탁, 감투의 힘을 빌려 사익을 위해 지역의 공익을 조금씩 떼어줘 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폐특법 재정립’이나 ‘강원랜드 바로세우기’는 앞으로도 현수막에 구겨 넣을 텍스트로만 유효할 것이다.

정선 최광호 기자 lead@jsweek.net

뉴스웨이 최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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