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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현 기자
등록 :
2020-01-03 14:04

[정백현의 직언]금융당국의 ‘윤종원 카드’, 해명이 필요하다

기업은행장 제청권 있지만 靑 결정에 ‘예스맨’ 전락
금융권 “원칙 잃은 행보…이젠 누구도 당국 안 믿어”
금융당국 令 바로 세우려면 인사 배경·이유 밝혀야

신임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첫 출근.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제26대 IBK기업은행장으로 외부 출신인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내정됐다. 윤종원 은행장은 내정 후 첫 날인 3일 오전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으로 출근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반발에 막혀 10분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윤 은행장이 기업은행장에 선임되면서 지난 2010년 물러난 윤용로 전 은행장 이후 10년 만에 다시 ‘관료 출신 기업은행장’ 시대가 열렸다. 기업은행은 최근 10년간 조준희, 권선주, 김도진 등 내부 인사가 은행장에 발탁되는 전통을 이어왔지만 그 전통은 끝을 맺게 됐다.

윤 은행장의 선임은 여러모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게 됐다. 기업은행 내부 구성원은 물론 금융권 안팎에서 전직 청와대 참모의 ‘낙하산 은행장’ 선임을 우려했지만 윤 은행장을 차기 CEO로 밀어붙인 것은 금융당국과 청와대의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권 안팎의 우려대로 윤 은행장은 민간 금융을 다뤄본 경험이 없다. 재무부 사무관에서부터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기까지 모든 경력이 거시 경제를 다루는 분야에서만 이뤄졌다.

그는 한때 차기 금융위원장이나 수출입은행장 후보로 거론된 적도 있다. 그러나 미시적 금융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줄곧 받았다. 더구나 그는 지난해 경제지표 부진의 책임을 물어 사실상 경제수석에서 경질된 바 있다.

사실상 실패한 경제 참모가 국내 기업의 자금 조달에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하는 정책금융기관의 CEO로 돌아오는 모습에 금융권 안팎에서 많은 우려를 보내고 있다.

이번 ‘기업은행장 선임 강행 사태’는 윤 은행장을 차기 은행장 후보로 밀고 관료 출신 국책은행장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우회적으로 흘린 청와대도 문제지만 이른바 ‘예스맨’으로 전락해버린 금융당국의 행보를 더 큰 문제로 지적할 만하다.

금융위원장은 기업은행장 임명에 대한 제청권을 갖고 있다. ‘제청’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어떤 안건을 제시하고 이를 결정해 달라고 청구하다’라는 뜻이 나온다. 즉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장 최종 후보를 제시하고 청와대에 결재를 청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

물론 기업은행장은 관련법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인사 문제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대로 처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311조원의 자산을 총괄하고 정책금융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자 수많은 고객이 사용하는 은행의 CEO 인사는 간단히 할 일만은 아니다.

기업은행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누가 정말 옳은 은행장 후보인지를 고르고 인사권자가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할 상황이 오면 금융당국 수장이 나서서 인사권자에게 인사 현안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제청권자의 할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금융당국은 그렇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이나 윤 전 수석이 차기 은행장 후보로 거론될 때 모르쇠로 일관했다. 적어도 인사권자를 설득하거나 기업은행 관계자들에게 선임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면 논란은 덜 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사권을 쥔 청와대의 눈치에 밀린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청와대의 선임 강행 방침을 묵인하고 제청하면서 시장 안팎의 비판을 한몸에 받게 됐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에도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있다. 은 위원장은 지난 2일 기업은행장 낙하산 인선 논란을 지적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도 낙하산 은행장 출신이지만 해당 기관에 누가 가장 잘 어울릴지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나도 낙하산 출신”이라는 발언은 금융당국 수장이 스스로 낙하산 인사를 합리화했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는 말이다. 더구나 여러 분위기가 민감한 상황에서 낙하산 인사를 두둔하는 듯한 어조의 말은 그야말로 벌집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윤 은행장의 선임으로 금융공기업에 또 다시 ‘낙하산 주의보’가 퍼지게 됐다. 제아무리 내부 인사가 CEO로 발탁되는 전통을 만들었다고 해도 정부가 강경 기조로 인사를 강행한다면 언제든 외부 출신 낙하산 인사가 CEO로 내려올 상황이 다시 생겼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나서서 ‘이제 낙하산 인사란 없다’고 장담해도 이를 믿을 사람은 없게 됐다. 금융권 일각에서도 은 위원장을 양치기 소년으로 빗대는 말이 나오고 있다. 떨어진 신뢰를 되찾고 혼란에 빠진 기업은행 노사를 화합시키려면 금융당국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임명 전 제청권자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만큼 왜 윤종원 전 수석이 차기 CEO로 선임됐는지, 관료 출신 인사가 금융공기업에 선임될 수밖에 없는지 배경과 이유를 이해당사자들과 국민들에게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할 일이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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